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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눈으로, 춤을 귀로… ABT가 그린 고전과 현대의 교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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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7 11:14:36 수정 : 2025-04-27 11: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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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ABT!”

 

눈높이 높은 작품만을 무대에 올리겠다며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가 문 연 25일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가 뜻깊은 무대에 작품 9편을 선보였다. 이 중 5편이 ABT가 세상에 처음 선보인 작품이니 고전 발레 몇 장면을 빼면 ‘오리지널 ABT’로 채워진 셈이다. ‘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라는 갈라 제목대로 정상급 무용단으로서 85년 역사를 응축한 프로그램에 최상의 역량을 갖춘 무용수들이 결합한 무대였다.

 

‘나뭇잎은 바래어 가고 중 2인무’에서 서희와 코리 스턴스가 가을의 서정을 담아낸 춤을 선보이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조지 발란신(게오르게 발란친) 안무작 ‘실비아 파드되’로 시작된 공연은 두 번째 작품 ‘대질주 고트샬크 중 2인무’부터 ABT만의 개성을 확연히 드러냈다. 현재 ABT 예술감독인 수전 재피가 무용수 시절이던 1982년 초연했던 작품이다. 이날은 선화예고·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박선미와 수석 무용수 캘빈 로열 3세가 경쾌하면서도 유연한 움직임과 인상적인 호흡맞춤으로 소화하며 ABT가 주창하는 ‘다양성’을 웅변했다.

 

이후 공연에선 ABT가 자랑하는 수석무용수들이 주역을 도맡았다. 세 번째 작품 케네스 맥밀런의 ‘마농 1막 중 2인무’에선 데번 토셔와 토머스 포스터가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두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맥밀런 특유의 내면 심리 묘사와 안무가 돋보인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네 번째 무대에선 스카일라 브란트가 오로라 공주로 분해 네 명의 군주들과 차례로 손을 맞잡으며 고난도 아라베스크를 이어가는 ‘로즈 아다지오’를 고도의 집중력으로 깔끔하게 선보였다.

 

밤하늘 아래 펼쳐지는 한편의 영화 같은 ‘시내트라 모음곡’의 커샌드라 트레너리와 헤르만 코르네호. GS아트센터 제공

모처럼 ABT와 함께 고국 무대에 선 서희는 다섯 번째 무대인 앤서니 튜더의 ‘나뭇잎은 바래어 가고 중 2인무’에서 올해 ABT 20년차 무용수로서 남다른 깊이의 춤을 보여줬다.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상과 상실, 계절의 흐름을 몸으로 표현하며 상대와 서로 다가가고 멀어지는 관계의 감정이 섬세하게 표출되는 춤이었다.

 

ABT의 개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은 ‘시나트라 모음곡’과 ‘네오’였다. 트와일라 타프가 안무한 ‘시나트라 모음곡’은 ‘스트레인저스 인 더 나잇’, ‘마이 웨이’ 등 프랭크 시나트라 명곡에 맞춰 현대인의 로맨스를 발레적 언어로 풀어냈다. 어두운 무대 위 별빛이 흩뿌려진 듯한 조명 아래 한 남녀가 펼치는 춤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여운이 무척 긴 작품이었다.

 

이자벨라 보일스톤과 제임스 화이트사이드가 미래적 감각의 움직임을 그려내는 ‘네오’. GS아트센터 제공

2023년 초연된 ABT 신작 ‘네오’는 조지 발란신이 남긴 명언 ‘음악을 눈으로 보고, 춤을 귀로 들어라(See the music, hear the dance)’가 떠오르는 춤이었다. 일본 샤미센 연주에 맞춰 이자벨라 보일스톤과 제임스 화이트사이드가 미래적 감각의 움직임을 창조했다. 붉은 조명과 간결한 의상, 전위적 음향이 어우러지며 ABT가 지향하는 컨템포러리 감각을 보여줬다.

 

ABT 박선미와 캘빈 로열 3세의 ‘대질주 고트샬크 중 2인무’.  GS아트센터 제공

2부는 수전 재피가 자신들의 ‘시그니처(대표작)’이라고 강조했던 발란신의 1947년작 ‘주제와 변주’가 무대를 꽉 채웠다. 차이콥스키의 관현악 모음곡 3번에 맞춰 마치 왕실 무도회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춤이 펼쳐졌다. 러시아 황실 발레의 형식미와 미국 특유의 모던함이 융합된 ABT의 상징적 레퍼토리다운 무대였다. 대규모 군무와 섬세한 솔로잉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궁정 발레의 품격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조지 발란신이 1947년 안무한 ‘주제와 변주’에서 ABT 무용수들이 고전 발레의 위계와 조형미를 응축한 춤을 선보이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13년만의 방한 공연을 위해 16명의 수석 무용수를 비롯해 단원과 스태프 등 104명이 총출한 ABT는 이날 공연을 시작으로 27일까지 다섯번 무대를 열어 ‘다락방에서(트와일라 타프 안무)’, ‘라 부티크(제마 본드〃)’, ‘변덕스러운 아들(카일 에이브러햄〃)’ 등을 공연하며 현대무용 최전선을 소개했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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