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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선 끝나면 공약도 ‘끝’… 기록관리 손 놓은 선관위 [심층기획-2025 대선 매니페스토-내일을 바꾸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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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8 18:20:26 수정 : 2025-04-29 02: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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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이회창 자료 요구에
“공보물·벽보만 있다” 답변
별도 보존 기간 따로 없어
홈피서도 검색조차 안 돼
선거정보도서관서도 ‘허탕’

그 많던 공약 기록물 어디로 갔나

선관위 “홈피 개편… 이전 자료 미등록”
대선 공약집 보존규정 無… 관리 방치
선거정보도서관은 ‘누구나 이용’ 말뿐
직원 동행해야 열람… 年 2∼3명 방문
정확한 검색어 모르면 열람도 어려워

공약집 발간 주체·형식 뒤죽박죽

선관위 공약집 정리 ‘1∼13대’ 단 한 번
14대 정책학회 15대 선관위 19대 정당
선거마다 발간주체 달라… 정보 누락도
“정당·후보 약속 지켰는지 점검할 수단
유권자 열람 쉽도록 체계적 관리해야”

“공약으로 제공할 정보는 없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후보의 대선 공약 및 관련 자료 요구에 이렇게 답했다. 이 관계자는 “공보물과 벽보 자료는 있지만 공약서는 없다”며 “18년이 지나 확인이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취재팀 추가 요청에 그는 “정당과에 확인해 보니, 이 후보가 10대 공약을 제출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며 “정책선거 자료의 보존기간이 5년이라 제출 여부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선거 때마다 대선 후보자들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면서 정책 공약을 쏟아낸다. 약속의 문서가 사라지면 약속을 한 정치인은 책임에서 쉽게 벗어나고, 이를 믿고 표를 던졌던 유권자는 약속을 잊어버린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독일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의 경고처럼, 모두에게 잊힌 공약은 결코 실현되지 못한다.

 

대선 공약은 후보 당락과 관계없이 소중하다. 한 후보자의 개인적인 선거 전략이 아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우리 사회의 고민과 목표, 비전을 담고 있다. 낙선하더라도 해당 후보자가 나중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거나 정당이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다. 사회적 자산인 셈이다.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뉴스1

김은경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의 정책 공약은 향후 유권자들이 선거에 임할 때, 성과를 토대로 평가하는 회고적 투표의 근거로 사용된다”며 “유권자들이 당선인의 공약이 아니더라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의 공약을 되짚는 일은 단순한 기록 열람을 넘어 민주주의를 점검하는 필수 행위라는 취지다.

 

28일 선관위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직전 대선 당선인인 윤석열 전 대통령 공약만 공개돼 있었다. 선관위 관계자는 “2022년도에 선관위 홈페이지가 개편되면서 이전 대선의 공약집과 자료는 올라가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재임 중인 당선인에 한해 임기 중 공약을 공개하고 있으며, 임기가 종료된 이전 선거 당선인의 공약은 비공개한다”고 덧붙였다. 제도 미비와 당사자들의 의지 부족 등으로 선거가 끝나면 역대 당선인을 포함한 후보자들의 약속은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다.

 

현행 선관위 기록물관리규칙 제8조(기록화 및 기록관리 대상)는 공식적으로 결재되거나 접수된 기록물뿐만 아니라 검토사항, 보고사항 등을 모두 기록물로 남겨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공약집의 보존 규정은 명확히 마련돼 있지 않다.

◆열린 척하며 닫힌 정책 공약으로의 길

 

16일 오후 2시, 4층 건물 상단 중앙에 헌법기관을 상징하는 무궁화 문양 속 ‘선거’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를 찾았다. 선관위 후관에 자리한 선거·정당 전문도서관인 ‘선거정보도서관’의 소장자료 16대 대통령선거 공약집을 보기 위해서다. 해당 공약집은 선관위, 선거정보도서관, 각 정당 홈페이지 등 온라인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선거정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선거정보도서관의 홈페이지 문구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평일 근무시간, 신분증을 제출하고, 개인정보수집동의서에 서명을 한 뒤, 선관위 소속 공무원이나 사서와 동행해야만 접근이 가능했다. 선관위 출입소 안내 직원에 따르면, 연간 시민 방문객은 두세 명뿐이라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과천=최상수 기자

선거정보도서관의 내부는 고요했다. 입구 왼편, 천장까지 닿는 약 4m 높이의 책장에는 국회의원 선거총람, 지방선거 결과, 대통령선거 관련 책자가 빽빽했다. ‘19대 대선 공약집’을 사서에게 요청하자, 사서는 소장자료를 검색하다가 “정확한 제목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다른 사서는 “공약집을 여러 곳에서 만들고 있어 체계가 복잡하다. 한국정책학회에서 주관하는 것 같다가 또 선관위 정당과나 선거과가 맡는다. 선거 총람 부록에 공약집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정책 공약

 

선거정보도서관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선거, 정당 관련 정보를 한눈에!!’라는 문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실상은 정확한 자료 제목을 아는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는 조각난 퍼즐 같다. 노트북을 펼쳐 선거정보도서관 홈페이지 검색창에 ‘대선 공약집’을 검색하자 검색 결과는 ‘0건’.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검색어를 바꾸면 그제야 22건이 나왔다. 선거도서관이 보유한 원문자료 28만여개 중 선거공약서는 707개. 이 중 검색된 22건의 ‘대통령선거 공약’ 관련 자료 중 대선 공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도, 유권자가 원하는 정제된 공약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대 대선의 공약집도 검색되지 않았다.

 

취재팀이 선거기록보존소에 문의한 다음 날, ‘제20대 대통령선거 정책 공약 모음집’,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정당정책 모음집’이 신착자료에 등록됐다. 20대 대선은 3년, 22대 총선은 1년이 지난 후에야 선거정보도서관에 등장한 것이다.

 

역대 대선 공약집을 찾기 위해, 취재팀은 결국 선관위의 선거기록보존소에 정보공개를 청구해야 했다. 선거기록보존소는 선거정보도서관에서 이미 볼 수 있는 자료라며, 정보공개 대신 자료 목록 파일을 건넸다. 목록에 적힌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 ‘정당의 정책 설명 자료집’과 같은 자료가 눈에 띄었다. 해당 자료가 대선 공약집이라는 걸 유추하기 어려운 제목이었다. ‘대선 공약’과 같은 공통의 언어가 없었기 때문에 검색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확한 검색어를 입력해도 원문을 확인하기 어려운 자료도 있었다. ‘제16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 비교분석집’과 ‘제16대 대통령선거총람’ 모두 선거정보도서관에서 디지털 원문을 찾기 어려웠다.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없는 16대 대선 공약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팀이 선거정보도서관에 직접 찾은 이유다.

지난 16일 취재팀이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책장 앞에서 16대 대선 후보자들의 공약이 담긴 ‘제16대 대통령선거총람’을 찾고 있다. 과천=최상수 기자

◆형식·제목·발행기관도 제각각

 

공약집을 발간하는 책임 주체가 뒤죽박죽이었다. 정당, 학회, 선관위에서 제각각 발간한 탓에 체계가 부족했다. 중앙선관위가 역대 대선 공약을 직접 정리한 공약집은 제1∼13대 대선 자료를 엮은 ‘政黨(정당)의 選擧公約(선거공약)’이 유일했다. 이 책이 1988년 발간된 후 개정판이 없었다. 37년간 대선 후보의 공약은 줄곧 뿔뿔이 흩어진 채 존재했다. 5대 대선이 있었던 1963년에 설립된 선거관리위원회가 62년 동안 역대 공약을 책으로 정리한 적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국정책학회가 ‘정당의 정책 설명 자료집’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97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라는 이름으로 다시 중앙선관위가 발간했다. ‘97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라는 서지 제목으로는 선거정보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원문이 검색되지 않아 다시 선거기록보존소에 문의한 결과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라는 검색어로만 원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과천=최상수 기자

17대 공약집엔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공약이 실종됐다. 한국정책학회에서 발간한 ‘제17대 대통령 정당후보자 정책공약 비교분석’은 후보가 제출한 원본이 아닌 학회가 분석한 2차 가공된 자료였다. 후보의 주요 핵심 공약과 우선순위를 한눈에 볼 수 없었다. 후보가 직접 제출한 공약을 선거기록보존소에 문의하자, ‘2007년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를 안내했다. 하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해 355만9963표(15.07%)를 얻은 이 후보의 공약은 존재하지 않았다.

 

18대부터 20대는 상대적으로 체계가 잡혀가는 듯했지만, 제목과 발간 주체는 여전히 일관성이 없었다. 18대는 ‘2012년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에서 찾아볼 수 있었고, 19대는 각 정당에서, 20대는 다시 중앙선관위가 발간했다.

 

김 교수는 “공약은 유권자가 정책으로 정당과 후보를 평가하는 최소한의 도구”라며 “선관위는 당선자뿐 아니라 낙선자를 포함한 모든 후보의 공약을 유권자가 열람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흩어진 공약을 눈으로 확인하고, 선거정보도서관을 나왔다. 정책선거의 핵심인 공약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유권자의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유권자가 기억하고 평가하며 약속의 책임을 되물을 수 있는 관리된 공약은 어디에도 없었다.


특별기획취재팀=조병욱·장민주·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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