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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부과, 형식 아닌 실질에 따라야 [알아야 보이는 법(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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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9 00:09:15 수정 : 2025-04-29 0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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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세법에서는 실질과세 원칙이 지도 원리로 작용되고 있습니다. 실질과세 원칙은 헌법상의 기본 이념인 평등의 원칙을 조세 법률관계에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원리입니다. 과세요건 사실에 관해 형식 또는 외관과 실질의 사이에 괴리가 있으면 그 형식 또는 외관에 불구하고 실질에 따라 담세력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게 요지. 부당한 조세회피 행위를 규제하고 과세 형평을 제고해 조세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업허가 명의가 다른 사람으로 되어 있어도 실제로 영업을 한 자가 소득의 귀속자이고, 당사자가 매매계약을 맺고 증여로 등기하더라도 매매로서의 법적 실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실질이 임대차 계약에 의한 임대료인 이상 그 명칭이나 법적 형식이 사용료이든 관리비이든 모두 임대소득에 해당하며, 종업원에 대한 대여금을 법인 장부에 급여로 계상해도 그 비용을 인건비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국세기본법 제14조에서는 위와 같은 실질과세의 원칙에 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1항은 실질귀속자 과세의 원칙에 관해, 제2항은 실질내용 과세의 원칙에 관해, 제3항은 제3자를 통한 우회 거래나 둘 이상의 행위 또는 거래를 거치는 다단계 거래에 의한 조세회피 행위의 부인에 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제3항의 취지는 과세 대상이 되는 행위 또는 거래를 우회하거나 변형해 여러 단계의 거래를 거침으로써 부당하게 조세를 감소시키는 조세회피 행위에 대처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 단계의 거래형식을 부인하고 실질에 따라 과세 대상인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로 보아 과세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서,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태양 중 하나를 규정해 조세 공평을 도모하고자 한 것입니다(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7두57516 판결 등 참조).

 

최근 선고된 대법원(2025. 3. 27. 2023두37865) 판결도 실질과세의 원칙을 적용해 거래를 재구성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된 사건입니다. 부동산 매매업과 분양 대행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인 원고는 개인들이 매수한 농지들에 관해 분양대행 약정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불특정 다수인에게 이를 지분별로 분할 매각한 뒤 그 분양 차익의 대부분을 분양대행 수수료 명목으로 취득했습니다. 과세관청은 “원고가 분양대행 용역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토지를 우회 취득한 뒤 분할 매각해 토지 매매업을 영위했다”는 이유로, 원고에 대해 부가가치세 등의 부과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을 했습니다. 이에 원고가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한 사안입니다.

 

1심과 2심(항소심)은 “분양대행 약정이 법률행위로서 효력이 없는 가장행위에 해당한다거나 거래와 관련한 세금계산서가 가공거래에 의한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실질과세 원칙은 사법(私法)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가장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실질과 괴리되는 비합리적인 형식이나 외관을 취하였다고 볼 만한 조세회피 행위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위 규정을 적용해 거래 등의 실질에 따라 과세하기 위해서는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행위 또는 거래의 형식이나 과정이 처음부터 조세회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그 실질이 직접 거래를 하거나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당사자가 그와 같은 형식을 취한 목적, 제3자를 개입시키거나 단계별 과정을 거친 경위, 그와 같은 방식을 취한 데에 조세 부담의 경감 외에 사업상의 필요 등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각각의 행위 또는 거래 사이의 시간적 간격 및 그와 같은 형식을 취한 데 따른 손실과 위험 부담의 가능성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더불어 “다만 납세의무자가 위와 같은 행위 또는 거래의 형식을 취한 데에 사업상의 필요가 인정되더라도 그것이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불법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경우에 해당한다면, 이에 대해 조세회피 목적을 부인하는 것은 강행법규의 입법 취지, 과세 형평 등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므로, 그러한 사업상의 필요만으로 조세 부담의 경감 외에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아 조세회피 목적을 쉽사리 부인할 것은 아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이 사건 분양대행 약정, 이 사건 토지 매매 등 일련의 행위 또는 거래의 형식이나 과정은 처음부터 원고의 조세회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 그 경제적 실질이 원고가 직접 이 사건 토지를 취득해 양도한 것과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있어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의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실질과세의 원칙이 사법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가장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실질과 괴리되는 비합리적인 형식이나 외관을 취했다고 볼 만한 조세회피 행위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해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범위를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김지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jieun.kim@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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