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은 몇 개 사단이나 거느리고 있소?”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게 내뱉은 말이다. 당시 처칠은 폴란드가 가톨릭 국가라는 점을 들어 ‘소련이 폴란드와 친하게 지내야만 교황과도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취지로 설득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여긴 스탈린은 교황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코웃음만 쳤다.
교황의 ‘힘’을 무시한 스탈린의 처사는 명백한 잘못이라고 하겠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소련 간에 냉전이 본격화한 뒤 교황은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핵무기 보유국들이 서로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군축해야 한다’는 취지의 강령을 채택했다. 그가 19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만난 직후 고르바초프는 소련 국민에게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는 몇 년 뒤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라는 대변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의 호소는 무엇보다 러시아를 향한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지목해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전쟁이 2년을 넘긴 2024년 3월에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백기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리보고 백기 들고 항복하라는 얘기냐”고 항의하며 국제적 논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의 선종 후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인 레오 14세 교황이 탄생했다. 미국 국방부는 엊그제 홈페이지를 통해 레오 14세의 아버지 루이스 프레보스트(1920∼1997)가 2차대전 참전용사라고 소개했다. 1943년 미 해군 소위로 임관해 이듬해인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하는 등 나치 독일을 격퇴하기 위한 전투에 앞장섰다고 한다. 레오 14세는 새 교황으로 선출된 뒤 일성으로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길”이라고 말했다. 이 바람이 꼭 이뤄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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