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친중 이미지 털고 신뢰 쌓아야
美 청구서에 핵잠재력 ‘맞불’ 필요
文정부 ‘한국 패싱’ 반면교사 삼길
2018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났다. 트럼프는 회담 직전 문 대통령을 옆에 앉혀둔 채 36분간 기자들 질문을 28개나 받았다. 대부분 미국 내 정치 현안이었는데 마지막에야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미국과 긴밀하게 공조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그마저 트럼프는 “내가 이미 들은 내용일 테니 통역할 필요가 없다”며 싹둑 잘랐다. 이때부터 ‘코리아 패싱’의 싹이 튼 게 아닌가 싶다.
문 정부 시절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차례로 열렸고 남·북·미 정상 간 판문점 회동도 연출됐다. 화려한 외교 쇼의 약효는 얼마 가지 못했다. 당시 북한 비핵화를 위해 제재와 압박을 가하던 국제사회와는 반대로 문 대통령은 집권 5년 내내 대북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에 집착하다 외교적 파산위기에 몰렸다. 2019년 2월 북·미 정상 간 하노이 협상이 ‘노딜’로 끝난 후 북한에 배신감만 남겼고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는 처지가 됐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로부터 “약한 지도자” “배은망덕”이라는 비난을 들었고 ‘삶은 소대가리’와 같은 북한의 막말과 조롱에 시달렸다.

이번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는 2기 집권 들어 더 독해지고 완력도 세졌다. 그는 관세협상에서 3500억달러 대미투자의 선물 보따리를 받고서야 정상회담을 수락했다. 25일 한·미 정상회담의 화두는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현대화다. 한·미동맹의 방어대상이 종전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태평양 전역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트럼프가 보기에 북한의 안보 위협이 쪼그라드는 대신 중국의 군사력은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과 세계 5위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빼곤 남침을 감행할 가능성은 작아졌다는 얘기다.
상호방위조약을 따져봐도 미국이 대만과 남중국해 분쟁에 참전한다면 우리도 돕는 게 맞다. 미국은 일본·영국·프랑스·호주·필리핀 등 동맹국들과 여러 안보·방위 협력체제를 가동하고 있는데 여기에 한국만 빠져 있다. 한국도 대중포위망에 합류하라는 트럼프의 압력은 마냥 외면하기 쉽지 않다. 지난달 말 한·미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양국은 동맹 현대화에 의견을 같이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고 나면 주한미군 감축 및 전략적 유연성과 분담금 인상, 국방비 지출 확대와 같은 안보 청구서를 쏟아내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대통령은 문 정부의 외교·안보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트럼프의 대외정책 노선과 동북아 안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중국의 대만 공격을 ‘외계인의 지구침공’에 빗대는 안일한 인식은 접어야 한다. 친중·반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상호 신뢰를 쌓는 게 급선무다. 안보 청구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북 억지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되 유연한 대처로 우리 군의 자강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분담금이나 국방비 지출 증액은 감내할 수준에서 받아들이되 일본 수준의 핵잠재력 확보나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받아내야 한다. 호주처럼 핵추진잠수함을 사들이는 카드도 준비해야 한다. 핵잠수함은 미 해상전력과 연계해 대중 견제로 활용할 수 있고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대응도 유용하다. 미국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북·미 대화도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가 대북 유화 신호를 보내는 건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떼내 중국의 고립을 심화시키려는 의도가 짙다. 트럼프가 핵 감축 혹은 동결과 제재 완화를 맞교환하는 거래를 하지 말란 법이 없다. 어설픈 줄타기에 기댔다가 한국만 소외되는 ‘코리아 패싱’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
한·미에 앞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 역시 지혜롭게 활용해 봄 직하다. 일본은 경제와 안보 상황이 우리와 비슷한 만큼 양국 공조와 협력을 다지는 건 미국발 안보·통상 위기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미 트럼프와 수차례 회담과 통화를 한 만큼 그가 이 대통령에게 건넬 경험과 조언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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