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명박 정부 때 교향악단 창설
지난 6월 李대통령 취임식서 연주 선봬
美 미드웨이 항모서 열린 공연 본 노병
“현대자동차 살 것” 말할 때 뿌듯함 느껴
2025년 ‘유엔군 참전의 날’에 국민포장 받아
“음악을 통해 보훈 외교 이어갈 것” 다짐
10여년간 서초교향악단 예술감독 활동
세계 첫 하이든 교향곡 전곡 연주 도전
군대에 갔다 온 사람 중에도 국군교향악단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0년 창설돼 어느덧 15년 역사를 지닌 교향악단으로, 단원들이 육·해·공군 장병 및 군무원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지난 6월4일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취임식 때 웅장한 연주를 선보였다. 이 국군교향악단의 초대 음악감독은 현재 서초교향악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배종훈(62) 지휘자다. 그는 “개인적으로 육군 수도기계화사단 군악대 출신”이라며 “군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에 열정을 다했다”는 말로 교향악단 창단 준비 시절을 떠올렸다.
정부는 2013년부터 매년 7월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1953년 7월27일 유엔군과 북한군, 중공군이 6·25 전쟁 정전협정을 체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올해 기념행사에는 세계 각국의 참전용사 및 그 후손들 외에 배 지휘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그는 유엔 참전국과의 우호·협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김민석 국무총리로부터 국민포장을 받았다. 국가보훈부는 “배 지휘자가 2009년부터 국내 및 22개 유엔 참전국에서 유엔 참전용사 추모 및 감사 음악회를 꾸준히 개최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반포심산아트홀에서 배 지휘자와 만나 ‘클래식 음악을 통한 보훈 외교’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무슨 계기로 2009년부터 유엔 참전용사 추모 및 감사 음악회를 하게 되었나.
“아내가 미국 국방부 소속 약사(군무원)다. 나는 부산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유엔군 묘지(현 유엔기념공원)를 지켜봐 ‘유엔’이란 기구가 익숙하다. 음악 공부를 시작한 이래 일본 도쿄, 오스트리아 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독일 베를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을 돌아다녔고 결혼을 계기로 LA에 정착했다. 지인들로부터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로서 애국적이고 의미 있는 공연을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운 유엔 참전국들에 감사하는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이 소식을 접한 보훈부가 ‘유엔 참전용사 한국 재방문’ 사업과 연계하자는 제안을 했다. 결국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참전용사 200여명과 유관 단체 관계자 등 5000여명을 모시고 제1회 ‘유엔 참전용사 추모 평화 음악회’를 KBS와 함께 성대하게 치렀다. 감동한 참전용사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내 인생의 가치를 여기에 두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16년간 꾸준히 국내 및 해외 참전용사들을 찾아가는 감사와 평화의 음악회를 하고 있다.”
―국군교향악단 초대 음악감독은 어떻게 맡게 되었나.
“1회 유엔 참전용사 추모 음악회 개최 이듬해인 2010년 국방부의 국군교향악단 창단 준비에 참여했다가 초대 음악감독이 되었다. 요즘 ‘K클래식’의 인기가 대단한데 훌륭한 청년 음악인들이 전공을 살리며 국방의 의무도 다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여겼다. 국군체육부대를 보면서 용기를 냈다. 음악감독 시절 100명 넘는 현역 장병을 데리고 미국 샌디에이고의 미드웨이 항공모함에서 선상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전쟁의 상징인 항모 위에서 대한민국 국군이 음악을, 평화를 노래하다’라는 주제를 떠올렸다. 공연을 관람한 어느 미 해군 예비역 제독이 내게 ‘전쟁 후에도 이렇게 감사를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최고’라며 ‘앞으로 내 손자들에게 현대자동차 제품을 사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민간 외교관이자 애국자가 된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 16년간 배 지휘자가 유엔 참전국 국민을 비롯해 전 세계인을 상대로 선보인 보훈의 무대 가운데 2023년 10월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빼놓을 수 없다.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엔 초청 음악회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 소프라노 조수미가 출연했고 유엔에 주재하는 세계 각국 외교관은 물론 미 육군사관학교 생도 40여명도 특별히 자리를 함께했다. 배 지휘자는 “2020년부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유엔 참전국 순회 연주회가 취소돼 안타까웠다”며 “그래서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이 끝날 무렵 모든 참전국 외교관이 상주하는 유엔 본부를 찾아가 감사를 드리는 차원에서 공연을 기획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도 서초교향악단을 이끌고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에서 공연을 했던데.
“독일은 원래 6·25 참전국 명단에 없다가 문재인정부 시절 포함됐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베를린 공연을 했는데,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알리게 돼 가슴이 벅찼다. 영국에서는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또 서울 서초구와 자매 도시를 맺은 런던 킹스턴 시 지역에서 공연을 해 더욱 뜻깊었다.”
―리틀엔젤스예술단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은 6·25 전쟁 참전국을 위한 공연과 관련해선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장선 곳이고 또 유일한 예술 단체로 이 분야에서 아주 유명하다. 올해 들어 미국 워싱턴 행사와 베를린, 런던 공연 때 리틀엔젤스예술단이 함께 참여했다.”
서초교향악단은 서초문화재단의 상주 예술 단체다. 광역자치단체도 아니고 기초자치단체 산하 문화재단이 상주 예술 단체를 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배 지휘자는 “국군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3년을 마치고 나서 쉬는 동안 음대 교수로 있는 여러 후배가 ‘서초구에서 뭔가를 좀 일으켜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그 배경을 소개했다. 이어 “10년 전에 서초구청장을 뵙고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 등 문화예술 인프라가 독보적으로 많은 서초구가 문화예술 대표 도시가 돼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우선 상주 예술단으로 클래식 음악 중심의 교향악단 창단을 제안한 것이 받아들여졌다”고 덧붙였다.

―서초교향악단은 내년까지 하이든 교향곡 전곡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별히 하이든이란 작곡가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모든 공연이 취소된 시기의 일이다. 내가 빈에서 유학할 때 베토벤 못지않게 좋아했던 작곡가가 하이든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 기간에 ‘하이든 교향곡 107곡 연주를 통해 음악으로 힐링을 하다 보면 코로나19도 끝나겠지’ 하는 결심을 했다. 서초문화재단 측도 흔쾌히 허락하고 열심히 지원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런 프로젝트를 받아들이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문화재단은 세계에 없을 것이다. 하이든은 30년간 지치지 않고 교향곡을 작곡해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2026년 7월까지 무사히 잘 마치면 하이든 교향곡 107곡 전곡을 라이브로 연주한 세계 최초의 예술 단체로 역사에 기록된다.”
―이번 국민포장 수상을 계기로 향후 ‘클래식 음악을 통한 보훈 외교’의 포부 또는 각오가 있다면 들려 달라.
“꾸준히 하다 보니 이러한 상도 주어지는구나 싶다. 처음 시작한 뒤 13년을 도와준 사단법인 호국문화진흥위원회(이사장 임우근)와 2022년부터 적극 지원해 온 협성창애장학재단(이사장 김청룡) 그리고 보훈부 덕분에 유엔 참전국 순회 연주가 가능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상까지 주시니 더욱 감사하게 여긴다. 사실 예전에 국군교향악단에서 일할 때도 대통령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등 수상 제안을 받았으나 부담감 때문에 거절했다. 이번에는 ‘초심을 잃지 말고 평생 약속한 대로 끝까지 나라를 위하여 일하라’는 뜻으로 여겨 국민포장을 받았다. 앞으로 더욱 완성도 있고 감동이 넘치는 클래식 음악 연주를 통해 보훈 외교, 문화 외교, 또 평화의 사도로서 남은 일생을 더욱 열정적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인생에서 무언가에 뜻을 두고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는 점에서 내가 더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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