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전문가 “부작용 최소화” 목소리
“국민 지지·합헌적 정당성 갖추고 추진
정치 지형 영향 받지 않는 시스템 갖춰야
정권 바뀔 때 마다 반복되면 국민 피해”
“檢 악마화·기관 해체만 목적 돼선 안돼
개혁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국민이어야
수사·기소기관 서로 협력해야 국민 혜택
하급심 강화·국민참여재판 확대 등 필요” 끝>
이재명정부 출범 직후부터 추진된 개혁으로 대한민국 형사·사법시스템은 대변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권의 ‘힘’이 가장 세다는 1년 차에 이미 검찰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고, 사법부 역시 조만간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법무부 산하 공소청과 행정안전부 산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안은 공개되자마자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여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예고하는 등 속도전을 펴고 있다. 사법 개혁과 관련해선 일명 내란특별재판부 도입과 대법관 증원·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이 논쟁거리다.
18일 세계일보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법조계 인사들은 형사·사법시스템 개편과 관련해 제기되는 우려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개혁 논의가 권력자가 아닌 일반 국민의 관점에서 공정성과 독립성 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력자 아닌 일반인 기준서 봐야”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형사·사법 제도 개편에 있어서 기준점이 권력자들이나 힘 있는 사람들 사건이 돼선 안 된다. 이런 사건에는 검사의 출세 욕심이나 권력 또는 외부의 압력 같은 것들이 개입되기 때문”이라면서 “장삼이사(張三李四·이름이나 신분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가 죄를 저질렀을 때, 혹은 범죄 피해자가 됐을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와 관련된 절차를 중심에 놓고 보다 효과적으로, 적시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 참여했던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형사·사법 개혁의 성공 요건으로 “우선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민주적 정당성과 합헌·합법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절차적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며 “그다음은 단호한 의지와 신속한 추진인데, 문재인정부 때 검찰 개혁의 경우 이게 부족해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짚었다. 김 연구위원은 “마지막으로 합리적이고 효능감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른 의견의 가능성들을 존중하면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성민 경상대 법과대학 교수는 “어떤 형태로든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수사권 조정이나 수사구조 개혁 등이 좌우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매번 정부가 바뀐다거나 총선 이후 국회 의석수가 바뀔 때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정치 지형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불가역적인 형사·사법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우리 형사·사법 절차의 공정성과 국민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박 교수는 “각 진영이 수사구조 개혁을 얘기할 때마다 국민의 인권 보장, 민생 안정 이런 표현들을 쓰는데, 그게 단순히 정치적인 구호나 슬로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국민을 위한 것인지 조금은 고민해줬으면 한다”며 “정치인뿐만 아니라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나 저처럼 학교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 부분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세부적인 사안들은 충분히 협의하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檢개혁엔 “해체가 목적 돼선 안 돼”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검찰 개혁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명예교수는 “여권은 검찰권 오남용을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관을 폐지하는 게 답은 아니다”라며 “검찰청 폐지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비교해야 하는데, 국민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에 검찰이 수사해온 부패·마약 등 중대 범죄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일침을 놨다.

검사 출신 김종민 엠케이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현재 진행되는 검찰 개혁을 보면 검찰 해체에만 집중하고, 신속하고 효과적인 형사·사법, 범죄 피해자를 배려하는 형사·사법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검찰 개혁은 집권 세력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게 아니다. 검찰 개혁의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국민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변호사는 “지금까지 검찰의 문제 중 50%는 검찰 스스로의 문제이고, 나머지 50%는 집권 정치세력이 검찰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며 “그게 가능했던 건 검찰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어서였다”고 짚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는 한 (기관 명칭이나 기능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정치적 중립성이나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정부·여당을 겨냥해 “검찰을 악마화하면서 ‘이런 검찰을 계속 둘 것이냐’는 식으로 선동을 하면 안 된다”며 “어떤 국가기관의 일부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걸 없애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질타했다. 그는 “검찰의 과도한 직접수사권 행사로 문제가 발생했다면 직접수사권을 없애는 대신 수사지휘권을 살리면 된다”며 “독일의 검사와 사법경찰관 관계처럼 상호 협력해 수사하도록 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 법전문가인 검사가 수사를 설계하고 기획하고 강제수사에서의 인권 침해 여부 등을 감독하면서 적법 절차를 준수하도록 수사를 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장애인권법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김예원 변호사는 “좋은 형사·사법체계는 범죄에 대한 신속하면서도 오류 없는 대응이 가능한가로 판가름난다”며 “1차 수사기관은 신속하게 수사에 집중하고, 법률전문가인 수사통제기관이 그 오류를 줄여 제대로 기소해야 가능한데, 경찰은 수사에 집중하고 기소권자인 법률전문가는 모든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통제에 집중하는 것이 절차도 간명하고 비용도 적게 들고 제도의 목적에도 부합한다”고 역설했다.
◆“논의 신중히 하되 속도 낼 땐 내야”

하태훈 고려대 법전원 명예교수는 수사시스템과 관련, “국가기관들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권한을 누가 가질 것이냐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처럼 돼 있다”며 “수사기관이든 기소 담당 기관이든 서로 협력해서 범죄자를 재판에 넘겨 처벌받도록 하는 게 공통의 목표가 돼야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여당이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신설하려는 국가수사위원회에 대해 하 명예교수는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수사기관끼리 모이는 상설협의체를 만들어서 논의해야지, 위원회를 새로 만들어서 수사기관들 위에 군림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법부 개혁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문재완 한국외대 법전원 교수는 “현재 사법 개혁의 방향이 틀렸다”며 “어떻게 하면 법원에 우수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할까, 항고심과 상고심 파기율을 낮출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재판소원 도입 같은 게 쟁점이 되면 사람들은 하급심을 못 믿고 오히려 상소를 하거나 재판소원을 하려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 교수는 “분쟁의 조기 종결을 위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며 “하급심 강화가 (올바른 사법) 개혁의 방향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하 명예교수는 “사법부는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데, 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하고 배심원 평결에 구속력을 줄 필요도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하급심 강화도 꼭 필요한데, 예산이 계속 줄고 있는 게 문제”라며 “사법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게 국민에게 질 좋은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서보학 경희대 법전원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논의의 장을 열고 합의된 안을 만들어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이렇게 되면 개혁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개혁의 핵심적인 부분들은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서 교수는 “예를 들어 검찰 개혁에서는 입법으로 수사·기소 분리를 일거에 진행하되, 이후 관계 법령 정비 등 후속 절차 때 여러 수사기관의 수사에 이런저런 통제 장치를 둬서 엄격한 감시와 상호 견제가 이뤄지도록 하면 된다”며 “법원도 국민에 대한 사법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등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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