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낼 돈이 없어 노후를 포기한 국민이 335만명에 달한다.
의무가입 연령대(18~59세) 인구 세 명 중 한 명은 연금 제도의 보호망 밖에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저소득층 지원을 대폭 늘리기로 했지만, 구조적 한계는 여전하다.
◆납부 못하는 사람 335만명…사실상 ‘연금 절벽’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소득이 끊겨 보험료 납부를 유예받은 ‘납부예외자’는 276만명, 1년 이상 보험료를 내지 않은 ‘장기 체납자’는 59만명으로 집계됐다.
기초생활수급자, 전업주부 등 법적으로 가입 의무가 없는 인구(663만명)까지 합치면 사각지대 인구는 998만명, 전체 의무가입 인구(2969만명)의 33.6%에 달한다.
즉, 노후 보장의 기본 틀인 국민연금 제도에서 세 명 중 한 명이 탈락해 있는 셈이다.
◆납부예외자, 월평균 소득 100만원선…“9만원 낼 여력조차 없어”
납부예외자는 대부분 일시적 실직, 불안정 노동, 저소득 자영업자 등이다.
“의지만 있으면 낼 수 있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납부예외자의 월평균 소득은 100만원 안팎이다.
식비·주거비 등 기본생활비를 제하면 연금보험료(최저 9%)를 낼 여력이 거의 없다.
특히 20~30대 청년층의 납부예외율은 최근 5년 새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정부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첫걸음으로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에 나섰다.
내년 1월부터 월 소득 80만원 이하 지역가입자 전원이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기존에는 보험료를 중단했다가 다시 낼 때만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처음 가입하는 저소득층도 지원을 받는다.
건설 일용근로자의 제도권 진입도 쉬워졌다.
올해 7월부터 가입 단위를 ‘현장’이 아닌 ‘사업장’으로 변경해 한 회사 소속이면 여러 현장을 옮겨 다녀도 연속적인 가입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본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국민연금은 노후소득 보장의 핵심 축이다. 이렇게 많은 국민이 제도 밖에 있다는 건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지적이다.
보험료를 깎아주는데 그칠 게 아닌 불안정 노동과 저소득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한 연금 전문가는 “지원 확대는 분명한 진전이지만, 단기적 ‘보험료 대납’ 형태로는 납부 지속률을 높이기 어렵다”며 “생애소득 기반의 맞춤형 유인책, 예컨대 소득 회복 시 자동 납부 전환 제도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납부예외자 급증은 경기침체와 비정규직 확대의 부산물”이라며 “결국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은 단기 지원보다 고용 안정성과 소득 기반 확충에 달려 있다”고 부연했다.
일용직·플랫폼 노동자들은 일은 하지만 ‘사업장’ 개념이 불분명해 연금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업장 단위 확대는 긍정적이지만, 사업주가 가입을 기피하지 않도록 관리·감독 강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또 다른 전문가는 “335만명이 연금보험료를 못 내 노후를 포기하고 있다”며 “이건 개인의 무책임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실패다. 국가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노후를 보장할 책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납부예외자 중 상당수는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정부는 지원 대상을 넓히되, 일시적 수혜에 그치지 않도록 근로·소득 연계형 지원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후, 단순히 개인만의 책임 아니다”
청년층의 연금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납부예외가 늘면 제도 전체의 지속성에 대한 불안이 커진다.
투명한 재정 공개와 청년 맞춤형 복귀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납부예외자와 체납자를 ‘비협조자’로 보지 말고, 구조적 소외층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포용적 사회보험 구현을 위해 행정절차 간소화와 자동가입 시스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보험료 지원은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불안정한 고용·소득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납부유예→체납→연금 미수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란 지적이다.
한 사회복지 전문가는 “국민연금은 ‘가입할 수 있는 사람만의 제도’가 돼선 안 된다”며 “일할 의지가 있는 모두가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짜 복지국가의 기준”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후의 양극화’는 이미 시작됐다.
국민연금의 문턱을 낮추는 일은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닌 ‘노후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국가의 마지막 안전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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