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거장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가 이끄는 체코 필하모닉이 역대급 연주로 국내 클래식 팬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요즘 말로 ‘무대를 찢었다’는 찬사를 받을 만한 내한 공연이었다.
‘보헤미아 사운드의 정수’로 평가받는 체코 필하모닉은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스메타나 ‘나의 조국’ 전곡을 연주했다. 피 끓는 애국심으로 스메타나가 민족 전설과 역사, 그리고 자연을 주제로 작곡한 6개의 교향시로 이뤄진 연작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나치 독일, 그리고 구소련 치하에서 피지배 민족으로 고난을 겪어야 했던 체코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대작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어야 했던 우리나라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 이 작품의 전곡 국내 연주는 드물다. 2010년 7월 서울시향, 2013년 2월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기록 정도가 검색된다.
특히 이날은 체코 독립기념일이자 두 번째 곡인 ‘블타바(몰다우)’ 초연 15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었다. 나치가 체코를 점령한 직후인 1939년 6월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나의 조국’ 전곡 연주로 조국 침략에 저항했던 체코필은 한국에서도 놀라운 집중력과 탁월한 기량으로 자신들의 자긍심을 펼쳐냈다. 악단 혈통에 깊이 각인된 이 곡의 DNA가 선명한 음색을 지닌 현악에 안정적 기량이 돋보이는 관악이 더해지면서 무대 위에 심상으로 떠오르는 연주였다. 체코필은 이 곡으로 2025 BBC 뮤직 매거진 오케스트라 어워드를 수상했는데 한국 실황 연주 역시 ‘올해 최고의 클래식 공연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관람평이 나왔다. 첫 곡 ‘비셰흐라드’부터 ‘블타바(몰다우)’, ‘샤르카’,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를 거쳐 전·후편으로 이어지는 듯한 ‘타보르’와 ‘블라니크’에서 체코 민족의 고난과 부활을 감동적으로 펼쳐냈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피부에 와 닿는 듯 중저음이 살아있는 체코의 사운드가 방부처리된 듯 거리마다 옛 발자취가 남아있던 프라하를 고스란히 소환했다”며 ‘감격적’이란 감상평을 내놨다.
체코필은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선 차세대 첼리스트 한재민과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b단조를 협연한 뒤, 비치코프가 ‘악단의 강점을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자신하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역시 전날처럼 ‘올해의 연주’로 꼽힐 만한 호연이었다. 체코필은 그윽한 현과 선명한 관 등 모든 부분에서 탁월했는데 특히 관악 솔로 파트가 교과서같은 안정적인 음색으로 인상적인 선율을 만들어냈다. 5번 교향곡 2악장에서도 호른이 시작한 멜로디를 목관이 이어받는 도입부 연주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감정의 중심이자 영혼의 고백’이라는 차이콥스키 음악에서 가장 진실한 슬픔과 위안이 만나는 순간으로서 2악장의 정수를 객석에 선사했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차이콥스키 교향곡이 자주 연주된 올 가을이었는데, 그중 가장 압도적인 연주”였다며 “통제된 음악 속에서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체코필 고유의 사운드가 고풍스럽고, 특히 2악장에서 악기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만끽할 수 있었던 순간”이라고 평했다.
2년 전 체코필과 처음 방한했을 때 ‘오케스트라 대전의 진정한 승자’라는 극찬을 받았던 비치코프는 이번에도 탁월한 음악적 리더십을 보여줬다. 늘 함께한다는 고풍스러운 지휘대와 함께 두 번째로 한국 팬을 만난 비치코프는 이틀 연속 공연 후 심야까지 팬들과 소통하며 사인회를 열었고, 연주가 끝나면 갈채를 충분히 즐기면서 각 파트 수석과 일일이 포옹하고 악수하는 모습에서 ‘거장’이전에 ‘덕장’으로서 그가 지닌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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