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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끝없는 전투의 길에서 만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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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30 23:24:59 수정 : 2025-10-30 23: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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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좋은 영화는 많지만 전율을 느끼게 하는 영화는 흔치 않다. 폴 토마스 앤더슨(PTA)의 ‘마스터’(2012)는 두려움과 경탄이 뒤섞인 전율을 일으키는 영화이다. 감독은 내면에 깊은 상처를 입은 인물들을 창조한 뒤에 그들의 내면에 깃든 어둠의 근원을 끝까지 파 내려간다. 아버지와 아들, 스승과 제자, 교주와 신도 등 유사 가족 관계에 놓인 인물들의 대립과 충돌은 종종 지배와 복종, 통제와 숭배, 폭력과 사랑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야기하는데, 이렇듯 폐쇄적인 집단 안의 인물들을 통해 감독은 욕망과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고 나아가 미국 사회의 신화를 해체한다.

 

PTA 영화의 중요한 특징은 인물들의 충돌과 대립을 근원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스터’의 두 주인공, 스승과 제자이자 교주와 신도인 랭카스터와 프레디의 관계는 극이 진행될수록 모호해진다. 마스터는 누구인가?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가? 그들의 관계는 폭력인가 사랑인가? 통제하는 자와 통제되는 자 사이의 권력관계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그들은 서로를 요구하며 의존하는 관계로 뒤엉켜간다. 그것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동시에 밀쳐내는 상호작용의 관계이다. “인간이 되려는 짐승 같은 자와 짐승이 되지 않으려는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전쟁의 무대는 배우의 얼굴이다.

감독의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5)는 '마스터'를 비롯한 전작들에서 반복되던 모티프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해 낸 새로운 걸작이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인간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탐구에서 한 걸음 나아가 미국의 토대인 이민자들의 국가를 백인 중심의 인종 차별주의 국가로 해체하려는 트럼프 시대 미국의 민낯을 드러낸다. 감독은 과감하게도 톱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자신의 새로운 도전물인 액션 스펙터클 장르 속으로 밀어 넣는다. 대폭 확장된 공간,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그어진 경계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가운데 낯설지 않은 미국의 혼란스러운 풍경이 생생히 묘사된다.

 

영화의 중심에는 과거 무장투쟁을 했던 부모 세대와 부모 세대를 불신하는 미래 세대의 갈등이 놓여 있다. ‘마스터’에서 시간 여행을 통해 특정한 시대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인간의 분투를 보여주었다면, ‘원 배틀…’에서는 혁명의 실패 뒤에 역사에서 추방된 부모 세대의 부박한 시공간을 그려낸다. 감독은 이민자 단속을 위해 군사 작전을 감행하는 정부와 이에 저항하는 반체제 무장 혁명가들이 충돌하는 폭력의 세계로 카메라를 돌린다. 카메라는 고장 난 내비게이션처럼 방향 감각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몰락한 과거의 영웅들을 미로 같은 시공간에 가둬 둔다. 영화에서는 “몇 시입니까?”라는 질문이 강박처럼 반복되지만 시공간의 블랙홀에 빠진 밥은 대답하지 못한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무한반복의 악순환. 그들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이란성쌍생아이다. 혁명은 실패했다.

 

이러한 혼란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과연 구원은 가능한가? 놀랍게도 영화는 가능하다고 답한다. 단, 그것은 혁명의 이상에 취했던 부모 세대가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실패를 인정하고 미래 세대를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할 때 비로소 화해와 구원의 길은 열린다. 그제야 밥은 분노의 도로를 넘어 딸을 만나게 된다. 가족이 복원된다. 이 영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필모그래피에서 몇 안 되는 낙관적인 영화이다. 그가 창조해 낸 위대한 영화세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하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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