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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수함보다 무서운 건 트럼프의 계산서였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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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7 09:45:33 수정 : 2025-11-07 10:15:27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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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스럽다. 감당할 수 있겠나.” 최근 기자와 만난 정부 소식통의 말 속에는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둘러싼 리스크가 숨어있었다.

 

‘우리가 만들테니 핵연료를 공급해달라’는 한국 입장과 ‘승인한다. 필리조선소에서 만들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장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그 사이에서 한국은 풀어야 할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미 해군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 1번함 버지니아함이 수면 위로 항해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작 리스크는 고려했나

 

정부는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낙관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는 4일 국무회의에서 “원자로, 무장 체계 등 핵심기술을 확보 중이고 안전성 검증을 진행 중”이라며, 2020년대 후반 건조 단계에 진입하면 2030년대 중·후반 선도함 진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도 이날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기자회견에서 “국무부 및 에너지부와 긴밀히 협력해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신중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잠수함 10여척을 건조하면서 재래식 잠수함 설계·건조 기술을 확보했다. 앞서 1990년대 러시아 OKBM사와의 협력을 통해 잠수함용 원자로 도면과 설계용 컴퓨터 코드 등을 입수했다. 이를 통해 스마트원자로를 개발했다.

 

일각에선 이를 축소하거나 상업용 소형모듈형원자로(SMR)를 토대로 잠수함용 원자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SMR은 대용량 원자로 구성품인 가압기,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등을 하나의 원자로 용기에 넣어 일체형으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재래식 잠수함이 오토바이라면 핵추진잠수함은 페라리다. 바닷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외엔 공통점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설계·기획 단계에서 핵추진잠수함은 핵연료와 원자로 배치부터가 난제다.

 

원자로 냉각, 방사선 차폐, 안전 설비 설계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장기간 수중 작전을 위한 내구성과 신뢰성 확보가 필수다. 미국·영국에서 설계에 3~4년에 걸리는 이유다.

 

원자로 개발·제작도 마찬가지다. 상업용 원자로는 지상에 고정되어 있으나, 잠수함용 원자로는 3차원 수중 기동을 하는 비좁은 선체 안에 있다.

미 해군 LA급 핵추진잠수함 루이빌함이 인도양을 항해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다양한 종류의 충격이 가해지는, 협소한 잠수함에 설치하므로 내구성과 신뢰성은 지상 원자로보다 훨씬 높아야 한다. 잠수함 선체와의 최적화도 필수다.

 

국내 잠수함용 원자로 기술은 실험실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 만들어서 지상시험과 수중시험을 하고 잠수함에 탑재해서 시험을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미국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어 핵연료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원자로 완성도 늦어진다.

 

제작단계에서도 핵추진잠수함은 방사선 차폐 시설과 고급 용접 기술이 필수다.

 

두꺼운 강판을 다층으로 용접해서 압력용기를 구성한다. 원자로 등이 선체 내에 복잡하게 설치되어야 하므로 모듈 단위로 공장에서 만들고 현장에서 최종 결합한다. 원자로 설치는 별도의 방사선 안전 구역에서 이뤄진다.

 

핵추진잠수함은 원자로 냉각계통과 증기 터빈, 발전기 등에 대한 높은 정밀도가 필수다. 원자로 시험 가동에만 수 주가 소요된다.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재래식 잠수함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며 준비해야 할 부분도 많다.

 

미국에서 핵연료와 기술을 지원받은 영국의 사례를 따른다고 해도 협정 체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영국은 4년이 걸렸지만, 프랑스는 미국 지원을 받지 못해 원자로·핵연료를 독자 개발하느라 13년이 걸렸다. 기술수준이 낮았던 인도는 25∼30년이 소요됐다.  

 

2030년대 중·후반 선도함 진수가 가능하다는 정부의 전망에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미 해군 LA급 핵추진잠수함이 버지니아주 노포크 해군조선소에서 창정비를 받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필리조선소 변수로 비용 리스크 증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필리조선소 건조는 비용 문제를 증폭시킨다. 군 소식통은 “지금은 비용 산출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정부는 국내 조선소에서 한국 기술로 만들고, 핵연료를 미국에서 공급받거나 자체 생산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핵연료 언급 대신 필리조선소에서 한국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의중에 거리를 둔 셈이다.

 

이는 비용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핵추진잠수함 척당 건조비로 거론되는 3조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계산법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물가와 환율, 화페 가치, 사업 방식이 달라졌으므로 비용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

미 해군 LA급 핵추진잠수함 컬럼비아함이 수면 위로 부상한 채 항해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에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미 합의로 한국에서 4척을 건조한다면, 방사능 차폐 시설 등의 신규 인프라와 정비·훈련체계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원자로 등의 핵심 장비 개발비도 추가된다.

 

이 모든 비용을 종합하면 미 해군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 1척당 건조비인 5조원과 유사한 수준이 될 수도 있다. 4척이면 20조원이다. 내년도 국방예산안 중 방위력개선비(20조1744억원)와 맞먹는다.

 

필리조선소에서 만들면 비용 리스크가 더 커질 위험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낙후된 필리조선소를 한국의 투자를 통해 현대적인 민·군 조선소로 바꾸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관측이다.

 

필리조선소에서 한국 핵추진잠수함을 만든다면, 미국은 쉽게 잠수함 건조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

 

필리조선소 일대 경제 발전과 조선업 발전도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필리조선소 건조 카드를 쉽게 접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미 해군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 콜로라도함이 기지에 정박해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면 한국은 군함 건조 기반이 없는 필리조선소에 설비투자를 해야 한다. 방사능 차폐 시설까지 만들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미국 노동자들을 건조에 투입하는 것도 인건비 증가를 부추긴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 노동자는 한국처럼 ‘빨리빨리’가 없다. 한국보다 제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노조가 한국보다 훨씬 강성이라 현지의 한국인 사업가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산 장비나 부품 탑재 과정에서 비용 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

 

한국에서 부품과 장비를 필리조선소로 옮기려면 태평양을 건너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 필라델피아항으로 가는 한 달짜리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

 

해상 운송비에 더해서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하면 비용은 더욱 불어난다.

 

미국 연방정부와 의회의 규제로 인한 비용 증가 위험과 더불어 한국산보다 비싼 미국산 소재·부품·장비 사용이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 해군 시울프급 핵추진잠수함 코네티컷함이 수면 위로 부상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렇게 되면 호주처럼 원자로 등 미국산 핵심 장비가 탑재된 채 미국에서 만들어진 핵추진잠수함을 한국이 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비용은 비용대로 부담하면서도 산업적 파급효과는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필리조선소에서 핵추진잠수함을 만들어도 또다른 문제가 있다. 운영유지비다.

 

미 해군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의 1척당 연간 운영유지비는 5000만∼1억7000만 달러(720억∼2500억원)로 알려졌다. 원자로 정비, 방사선 안전관리, 전문인력 인건비, 장비 유지보수, 도크와 특수 시설 운영, 무장·전자장비 관리비 등이다.

 

한국의 경우 잠수함 창정비를 필리조선소에서 진행하려면 잠수함을 미 동부 해안까지 옮기는 비용이 추가된다. 일반적으로 잠수함은 건조한 조선소에서 창정비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작전 도중 기술적 이상이 발생했을 때, 미국측 기술자를 긴급투입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도 적지 않다. 공군 E-737 조기경보기는 특정 부분에 대해선 미국인 기술자만 손을 댈 수 있고, 정비가 필요하면 미 본토에서 진행한다.

한국 해군 P-8A 해상초계기가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군 관계자는 “E-737에 이상이 생겨서 제작사 엔지니어에게 살펴달라고 하면, 제작사는 확인 작업만으로도 소정의 비용을 받고, 수리 견적도 상당하게 낸다”며 “미국에서 핵추진잠수함을 만들면,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필리조선소 건조 카드는 미 해군 못지 않은 운영유지비 부담을 한국 해군이 지게 될 위험이 있다. 한국 해군의 전력증강 계획을 근본적으로 흔들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술 발전 속도 빨라…효용성 따져야

 

문재인정부 시절 경항공모함 사업 추진이 강조될 때 다수의 드론을 탑재하는 드론항모가 대안으로 거론됐다. 당시 해군은 기술적 문제 등으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약 10년만에 해군은 무인기와 무인수상정 등을 탑재하는 3만t급 유·무인 전력모함(MuM-T Carrier) 확보 계획을 스스로 공개했다. 그만큼 무인 기술과 함정의 항공기 운용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는 의미다.

 

대잠수함 분야도 마찬가지다. 서방과 중국·러시아에선 항공기에서 해상에 투하되어 잠수함을 탐지하는 소노부이(음향탐지부표)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미 해군 요원들이 MH-60S 해상작전헬기에 소노부이를 장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양한 플랫폼에서 투하가 가능하고, 다수의 소노부이를 넓은 해역에 배치하면 탐지 범위를 넓히고 정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어서 대잠수함 작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개당 가격도 수백달러에 불과해 대량 운용도 쉽다.

 

서방의 소노부이는 수㎞ 거리의 음파를 탐지할 수 있고, 중국·러시아는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도 음파 탐지가 가능하다.

 

서방측은 AI와 머신러닝을 통합하고, 중국은 AI와 신소재를 결합한 국산화 전략을 추구한다. 러시아도 기술자립과 첨단 기술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잠수함 작전 수요가 증가하면서 세계적으로 기술 혁신이 가속화하고 있다.

 

무인 및 대잠수함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한반도에서 핵추진잠수함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핵추진잠수함 보유가 처음 거론됐을 때는 군사적으로 활용할 영역이 충분했지만, 군사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핵추진잠수함의 군사적 효과를 다시 한번 살피게 하도록 하는 원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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