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에 설명 없이 “움직이지 말라”
119 최초 신고도 승객이 먼저 해
사고 신고도 선장 아닌 항해사가
수동 운항구간서 자동모드로 가
해경, ‘과실’ 항해사·조타수 체포
경실련 “세월호·항공기 참변 연상
‘처벌에만 초점’ 중처법 손질해야”
20일 0시30분쯤 마지막 구조선을 타고 전남 목포시 목포해양경찰서 전용 부두에 내린 한 승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 밤 신안군 장산면 족도 인근 해상에서 좌초한 2만6000t급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에서 구조돼 부두로 이송된 승객 대부분은 아찔했던 사고 순간이 떠오르는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여객선에 화물차를 싣고 탔다는 한 승객은 “차를 내버려둔 채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승객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만 할 뿐 안내방송이 한참 뒤에야 나왔다”며 선사 측이 구조과정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고는 근무 중에 항해사가 휴대전화를 보는 등 딴짓을 하다가 난 것으로 잠정조사되면서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안전불감증이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좌초 사고를 수사 중인 목포해양경찰서는 퀸제누비아2호 주요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1차 조사에서 협수로 구간 내 자동 운항 전환 탓에 여객선과 무인도 간 충돌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사고 발생 지점인 신안군 장산도 인근 해상은 연안 여객선들의 항로가 빼곡한 협수로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이 구간을 통과하는 선박은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자동항법장치로 운항하지 않고 항해사가 직접 조타하는 수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객선 조타는 일등 항해사가 담당했고, 이 항해사는 휴대전화를 보느라 수동으로 운항해야 하는 구간에서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여객선은 22노트(시속 40∼45㎞)로 운항하고 있었는데 변침을 해야 하는 지점을 지나고 2∼3분가량 후 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해당 선박은 방향 전환을 위한 변침 시기를 놓쳤고, 기존 항로에서 3㎞ 정도를 벗어나 무인도로 돌진해 선체 절반가량이 걸터앉는 사고로 이어졌다. 이 항해사는 사고 발생 시간대 당직자였으며 선장은 조타실에서 자리를 비운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은 이날 운항 과실이 드러난 일등항해사와 조타수를 긴급체포했다. 또 조타실에서 자리를 비운 선장도 형사 입건해 조사 중이다.
여객선 사고 대응 매뉴얼 지침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난·위험 상황 발생시 선장은 즉시 조타실을 중심으로 선원들과 함께 인명 구조 등을 위한 행동 준칙을 시행하고 조난신호를 통신망을 통해 발송해야 한다. 하지만 119에는 승객이 먼저 신고했고, 해경 선박교통관제센터(VTS)에 퀸제누비아2호 사고를 최초 신고한 사람도 항해사로 확인됐다.
좌초 9시간여 만에 목포 삼학도로 입항한 퀸제누비아2호는 사고 조사와 안전 점검 등을 이유로 운항을 잠정 중단한다. 목포해경은 퀸제누비아2호의 좌초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선체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해경은 선체 내·외부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와 항해기록저장장치(VDR) 등을 확보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좌초 당시 충격으로 통증을 호소한 승객 27명은 목포 병원 6곳으로 분산 이송돼 치료를 받고 귀가 조치됐다. 일부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승객 4명은 현재 입원 중이다.
이번 사고와 관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세월호와 제주항공 참사와 같은 공중교통수단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신속하고 안전한 구조가 이뤄져 정말 다행이지만, 세월호 참사의 비극과 무안 제주항공기 사고의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미비를 들었다. 예방보다 사후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법이 적용되는 범위도 좁다는 것이다.
2021년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공중교통수단, 공중이용시설, 원료·제조물과 관련해 시민 1명 이상이 죽거나 10명 이상이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이나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의 재해를 입는 경우를 중대시민재해로 정의하고,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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