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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의 잠에서 깨어난 ‘선한 목자’ [종교 칼럼]

입력 : 2025-12-01 15:17:35 수정 : 2025-12-01 16:05:19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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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미술 가운데 가장 널리 사랑받은 그림이 있다면 단연 ‘선한 목자 예수’일 것이다. 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또 다른 양들이 주변을 둘러싼 그 모습은 오늘날에는 포근한 목가적 장면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 이미지는 기독교가 가장 혹독한 박해 속에 숨죽이며 살아가던 시대의 ‘상징적 예수 표상’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감히 십자가 처형 도구를 정면에 내세울 수 없었던 시절, 예수를 드러내는 또 다른 언어는 바로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목자’였다.

 

이 도상(圖像)의 기원은 요한복음 10장에 등장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 말씀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붙들어야 했던 생사의 상징이었다. 로마 당국의 감시를 피해 지하 카타콤베에 숨어들어 예배하던 그들은 비밀 통로 같은 어두운 방의 벽면에 젊은 목자의 모습을 조용히 그려 넣었다. 그 목자는 팔레스타인의 작은 양치기가 아니라, 죽음의 공포를 뚫고 자신들을 인도하는 ‘살아 있는 예수’였다.

 

특히 3~4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여러 카타콤베 벽화에서 보이는 선한 목자 도상은 놀라울 만큼 일관된 구성을 갖는다. 어깨 위로 한 마리 양을 들고, 양 옆에는 네 마리의 양이 대칭을 이루며 서 있다. 젊고 수염이 없는 목자의 얼굴은 부드럽게 빛나고, 배경은 생명을 상징하는 녹색의 수풀로 채워져 있다. 이 구성은 박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백이 압축된 이미지였다. 당시 그들은 예수를 그리되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목자’라는 온화한 외피 속에 ‘십자가의 구원자’를 숨기고, 그림이라는 은밀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고백을 남겼다.

 

로마 카타콤베의 벽에 남아 있는 프레스코, 즉 초기교회 벽화들은 이 도상의 절정이다. 프리실라, 도미틸라, 칼리스토 카타콤베 곳곳에서 발견된 선한 목자는 박해 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신앙의 불빛을 보여준다. 그리고 최근 이 도상과 놀랍도록 닮은 벽화가 튀르키예의 이즈니크(옛 니케아)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큰 의미를 지닌다. 어두운 방에서 살아난 목자의 모습은 마치 1700년 전 초대교회 신앙인들이 남긴 숨결이 불현듯 되살아난 듯한 인상을 준다.

 

이즈니크(Iznik)는 오늘날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옛 이름 니케아(Nicaea)로 불릴 때는 기독교 역사의 중심지였다. 서기 325년 이 도시에서 열린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자리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 비롯된 ‘예수는 참 하나님인가?’ 논쟁은 이미 로마 제국 전역을 흔들고 있었다. 교회는 이를 방치할 수 없었다. 예수가 피조물인지, 하나님과 같은 본질을 가진 인물인지에 대한 판단은 곧 기독교 신앙 전체의 기초를 좌우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니케아 공의회의 결론은 단호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와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이다.” 이 선언은 기독교 신앙의 기둥이 되었고, 훗날 삼위일체 교리가 정식으로 완성되는 토대를 놓았다. 결국 니케아는 기독교가 ‘누구를 믿는 종교인가’를 처음으로 공적으로 밝힌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는 그 역사적 결정의 17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바로 이 시점에 ‘선한 목자 예수’ 벽화가 이즈니크에서도 처음 발굴되었다는 사실은 우연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선한 목자’ 도상이 증언하는 예수의 얼굴, 즉 양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구원자는 니케아 공의회가 확인한 예수의 정체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벽화는 초기 신앙의 감성적 언어를, 공의회는 그 신앙의 이성을 각각 말하고 있으므로, 1700년의 시차를 두고 두 목소리가 이즈니크라는 같은 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셈이다.

 

이즈니크의 무덤 속 오랜 잠에서 깨어난 ‘선한 목자 예수’는 그래서 지난 11월 27일 이곳을 찾은 교황의 첫 해외순방 메시지와도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양들을 돌보는 목자처럼 그는 오늘의 세계가 잃어버린 대화와 사랑, 평화의 길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갈등의 고조 속에서 “대화를 촉진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교황의 호소는 초대교회가 목숨 걸고 붙잡았던 신앙의 핵심에서 흘러나온 말처럼 들린다. 전쟁과 불신, 종교적 갈등 속에서 잃어버린 양들을 다시 찾아 나서는 일이야말로 ‘선한 목자 예수’가 지금도 이 시대에 건네는 간절한 요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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