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데뷔… 사인 저혈압 쇼크
‘길소뜸’ 등 700여편 열연 펼쳐
제작·행정 등서도 왕성한 활동
여성 영화인 역할 확대에 앞장
“100년에 한번 나올 여걸” 추모
1960∼1970년대 충무로를 주름잡으며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렸던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김지미 배우가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영면했다”고 밝혔다. 사인은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영화가 1958년 이래 제작편수가 급증하는 등 1960년대 후반 ‘황금기’로 이어지던 시절, 고인은 그 중심에 있었다. 1960년대 내내 한 해 20편 이상, 많게는 34편까지 영화에 출연하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밤낮으로 스케줄을 쪼개는 ‘겹치기’ 촬영으로 한 달 촬영 횟수가 120회에 이를 정도였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고인의 출연작은 700여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해 1990년대까지 활동하며 한국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표 스타로 자리를 지켰다.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붙은 ‘화려한 여배우’라는 수식어는 그의 존재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고인은 서울 덕성여고 재학 중 명동 거리에서 김 감독에게 발탁돼 17세에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데뷔작의 성공으로 주목받은 그는 이듬해 멜로드라마 ‘별아 내 가슴에’(1958, 홍성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어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 박종호), ‘장희빈’(1961, 정창화) 등에 출연하며 세련된 미모와 현대적인 이미지, 빼어난 연기력으로 사랑받았다. 살인 사건의 중심에 선 미스터리한 여인을 연기한 ‘불나비’(1965, 조해원)는 그의 팜파탈(팜므파탈)로서의 매력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호스티스 멜로영화와 하이틴 청춘물이 주류를 이룬 1970년대 초중반, 적합한 배역이 줄어드는 속에서도 고인은 굳건한 존재감을 유지했다. ‘논개’(1972, 이형표)로 당시 최고 개런티를 경신했고, ‘토지’(1974, 김수용), ‘육체의 약속’(1975, 김기영), ‘을화’(1979, 변장호) 등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토지’에서 윤씨부인 역을 맡아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영화 ‘만추’의 리메이크작 ‘육체의 약속’에서 사랑에 빠진 죄수 역을 맡아 또 한 번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1980년대에는 임권택 감독의 ‘비구니’(1984), ‘길소뜸’(1985), ‘티켓’(1986)에 연이어 출연했다. 이산가족 아들을 찾아 나선 중년 여성을 연기한 ‘길소뜸’은 고인 연기력의 백미로 꼽힌다.
이 사이 흥행 감독 홍성기와 인기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의학박사 이종구와의 결혼과 이혼으로 그는 할리우드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비견되기도 했다. 최무룡과 이별하며 그가 남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은 현재까지도 회자된다.
자신이 원하는 영화와 캐릭터를 직접 만들기 위해 제작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1985년 영화제작 자유화 이후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첫 작품 ‘티켓’을 내놓았다. 고인이 강원 지역에서 직접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티켓다방의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었다. 임 감독과 송길한 작가, 정일성 촬영감독 등 한국영화사의 명장들이 모여 만든 이 작품은 여성에 대한 연민과 연대를 담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아메리카 아메리카’(1988, 장길수), ‘명자 아끼꼬 쏘냐’(1992, 이장호) 등 작품 역시 그가 제작자로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작품들이다.
영화 행정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위원 등을 맡으며 한국 영화계를 위해 힘을 보탰다.
고인은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한국 영화사에 이름을 새긴 인물이었다. 그는 2019년 한국영상자료원 구술채록에서 “여성영화인들이 뒤에서 쭈뼛쭈뼛거리지 말고 앞에 나서라.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다 앞장설 수 있다. 그러니 자신 있게, 떳떳하게 자기 할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이장호 감독은 고인에 대해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연기자이자 여걸, 여장부였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장례 절차는 미국 현지에서 치러진다. 영총은 별도 추모 공간을 마련해 고인을 기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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