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 초청 오찬 간담회 소식을 접하며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문제의 발언은 종교계 전체의 합의나 공동 입장이라기보다, NCCK 측 인사의 발언에 대통령이 공감을 표한 장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종교 단체를 ‘사이비’로 지목하고, 국가에 해산과 자산 환수를 공식 건의했다는 내용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통령이 “해악을 너무 오래 방치했다”며 공감을 표했다는 대목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원칙과 관련해 매우 중대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민주공화국에서 종교는 국가의 상위 기관이 아니다. 종교는 판결을 내리는 주체도 아니고, 처벌을 요구할 권한도 없다. 특정 단체가 불법을 저질렀다면 판단과 처벌은 오직 사법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일부 종교계 인사가 대통령 앞에서 특정 종교를 ‘사회적 해악’으로 규정하고 해산과 재산 환수를 요구했다면, 이는 종교가 도덕적 조언자의 역할을 넘어 사법적 판단에 가까운 요구를 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여기에 행정부 수반이 공감을 표시했다면, 문제는 종교계의 발언을 넘어 국가 권력의 헌법적 중립성에 대한 논쟁으로 확장된다.
“국가와 국민에게 해악을 미치는 종교 단체의 해산은 국민들도 동의할 것”이라는 발언은 특히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이 문장은 ‘국민 다수의 동의’가 헌법과 법치, 절차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수의 감정이 아니라, 다수를 포함한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절차와 권한을 엄격히 제한하는 체제다. 한국 현대사는 ‘국가에 해가 된다’는 추상적 판단이 얼마나 쉽게 탄압의 명분으로 작동해 왔는지를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한국사에서 권력이 종교의 도덕 권위를 ‘장식품’처럼 활용하려는 순간은 낯설지 않다.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 강요는 국가가 ‘사상 통일’과 동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종교의 양심을 길들이려 할 때, 신앙의 언어가 얼마나 쉽게 굴복과 분열로 바뀔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으로 기억된다. 권력은 충성을 강요했고, 종교는 침묵과 협조, 혹은 내부의 갈라짐이라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유신 체제 또한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국가적 위기’와 ‘통합’의 명분 아래 초헌법적 비상조치가 일상화될 때, 권력은 자신을 정당화할 도덕의 외피를 필요로 했고 종교는 종종 그 외피로 호출되곤 했다. 그 과정에서 종교는 권력을 견제하는 양심의 자리에서 밀려나기 쉬웠고, 국가는 ‘도덕’의 언어를 앞세워 제도와 규범을 넘어서는 길을 열 위험에 노출됐다. 역사는 말한다. 권력 앞에서 신앙과 윤리의 언어가 꺾이는 순간, 그 대가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공동체 전체가 오래 치를 수 있다.
종교가 권력 앞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집단을 ‘적’으로 규정해 달라는 유혹이다. 종교의 언어는 원래 죄를 처벌하기보다 성찰을 촉구하고, 배제하기보다 회개를 요구하는 데서 힘을 얻는다. 그러나 국가 권력과 결합한 종교의 언어는 순식간에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집단을 사회적 해악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강제력을 요청하는 방식은, 자칫 종교가 정치적 판단에 깊숙이 개입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종교는 양심의 감시자라기보다 권력의 도덕적 정당성을 보강하는 역할로 오인될 위험에 놓인다.
특히 ‘자산 환수’라는 표현은 정의의 언어로 들리지만, 법치의 관점에서는 매우 신중해야 할 요구다. 사법 판결 이전의 재산 박탈은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오늘은 ‘사이비 종교’라는 이름으로 제기되지만, 이러한 논리가 제도화될 경우 적용 대상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법치주의는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대상까지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간담회에서 이주민 혐오를 ‘파시즘의 온상’으로 규정하며 혐오와 단절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특정 종교 집단을 사회의 해악으로 규정하고 해산과 재산 박탈을 요구하는 언어는 과연 혐오와 무관한가. 혐오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규정의 문제다. 누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언어로 말하느냐에 따라 혐오는 정의처럼 포장될 수 있다.
대통령의 책무는 헌법 질서를 지키는 데 있다. 종교계의 문제 제기를 경청하되, 국가 권력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 행정부 수반의 역할이다. 그 선이 흐려질수록 종교의 공적 신뢰는 손상되고, 국가는 불필요한 갈등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국 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종교를 ‘쉽게 비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법치와 자유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순간이다. 종교가 권력과의 거리를 잃을 때 신앙의 순수성은 훼손되고, 국가는 위태로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우리는 지금, 정말로 헌법의 편에 서 있다고 믿어도 되는가. 오늘, 그 믿음을 흔드는 장면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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