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겨냥 환적·원산지 규제 강화
H200 재수출 땐 25% 관세 천명
韓 반도체 기업 등 대응책 필요
2026년 새해를 맞았지만 희망찬 새해라는 덕담이 낯설다. 성장 둔화와 사회 불안, 전쟁의 장기화가 겹치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문제가 안보의 영역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흐름은 주목할 대목이다. 미국은 지난 12월 국가안보전략(NSS)을 통해 관세와 수출 통제, 공급망 재편을 핵심 축으로 삼아 “미·중 간의 경제 균형을 재조정”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혔다.
문제는 그 여파가 미·중 모두와 긴밀히 연결된 지역으로 먼저 확산된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아세안이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화한 관세 공세에서 아세안 주요국들은 한때 30~40%대의 고율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4월5일 첫 관세율이 발표된 이후 캄보디아·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 등은 집중적인 협상을 거쳐 관세 수준을 20% 안팎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완화됐지만 그 대가로 수반된 조건과 향후 집행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베트남은 이 같은 아세안 딜레마의 축소판이다. 46%였던 관세는 20%로 하향됐으나 환적 상품에 대한 40% 추가 관세가 신설됐다. 구체적인 품목과 원산지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1월13일 주베트남 미국대사 지명자는 대미 무역흑자 확대와 중국 우회 수출 문제를 지적했다. 재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이 조치는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환적 문제가 부각되는 배경은 베트남의 무역 구조에 있다. 베트남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1월 총수입은 4096억달러(전년 대비 18.4% 증가)로, 중국이 1675억달러(41%)를 차지했다. 이 중 상당 부분이 전자부품 등 생산용 중간재로, 베트남에서 조립 후 미국으로 재수출되는 데 사용된 것이다. 대미 수출은 1530억달러로 확대됐으며, 컴퓨터·전자제품·부품(379억달러), 휴대폰·부품(94억달러)이 핵심 품목이다.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중국 중간재를 활용한 생산 모델이 베트남의 8% 성장을 뒷받침한 셈이다.
캄보디아·말레이시아·태국도 지난해 10월 쿠알라룸푸르에서 미국과 상호무역 프레임워크를 체결하며 미국산 공산품·농산물 관세 인하와 더불어 환적 회피 및 중국 우회 방지 조치, 핵심광물 협력을 합의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유사한 무역협상을 타결하고 이달 말 서명을 준비 중이다. 미국은 아세안 국가들과 개별 관세 상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환적·원산지 규제와 에너지·광물 조건을 국가별로 맞춤 적용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세안 경제에서 이는 장기 성장 경로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관세 합의 이후에도 환적과 원산지 판정은 주요한 리스크로 남을 전망이다. 중국 중간재 중심의 조립 생산은 아세안 성장의 기반이었으나 이제 규제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다. 환적·원산지 관련 관세 조항은 베트남을 넘어 다른 협정에도 반영됐다. 협상 과정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아세안 국가들은 관세 합의 이후에도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추가적인 협상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2025년 11월 합의로 15% 상호관세를 확보했다. 그러나 공급망의 지속 가능성은 2026년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아세안의 중국 중간재 의존 사례처럼 한국도 미국의 안보 중심 경제 전략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월14일 트럼프 행정부의 H200 반도체 재수출 25% 관세 포고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엔비디아 H200 등 고성능 AI 칩을 미국에서 수입한 뒤 제3국으로 재수출할 경우 25% 관세가 적용되며, 이는 섹션(Section) 232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가안보 통제 조치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핵심광물을 비롯해서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섹션 232 조사가 추가 무역제재로 이어질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NSS가 경제를 안보 영역으로 끌어들인 만큼 무역흑자 축소만이 아닌 전략적 관계 재검토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특히 첨단 분야에서의 대응 전략을 보다 면밀히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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