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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의 소멸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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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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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정변 이후 출범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직할시’(直轄市)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미 특별시 지위를 누리는 서울은 제외하고 인구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에 한해 중앙 정부가 도(道)를 건너뛰어 직접 관할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일종의 준(準)특별시인 셈이다. 1963년 부산이 처음 직할시로 승격했을 때 시민들 기쁨은 대단했다. 오죽하면 훗날 대통령에 오른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경축대회까지 열렸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 출범 직후에는 대구와 인천이 나란히 직할시 반열에 올랐다.

1963년 열린 부산직할시 승격 경축대회 모습. 단상 가운데의 선글라스 낀 인물이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홈페이지

5공 말기인 1986년 광주가 직할시 대열에 합류한 것은 논란을 남겼다. 당시 광주 인구는 90만명으로 직할시 요건으로 통하는 ‘100만명 이상’ 기준에 못 미쳤다. 광주를 직할시로 만들기 위해 인근의 전남 광산군(현 광주 광산구)을 통쨰로 광주에 편입시키는 졸속 행정이 있었다. “광주의 직할시 승격은 서둘러 정치적으로 이뤄진 일”이란 지적이 오늘날에도 끊이지 않는다. 뭐가 ‘정치적’이라는 걸까.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으로 손에 피를 묻힌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 전 어떻게든 이를 씻으려는 일종의 화해 시도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김영삼정부는 1995년 직할시를 ‘광역시’(廣域市)로 고쳤다. 지방자치 시대가 활짝 열린 가운데 ‘중앙 정부가 직접 관할한다’는 의미의 직할은 틀린 개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전(1989년)과 울산(1997년)까지 총 6개의 광역시가 생겨난 뒤 정부는 추가로 광역시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경남 창원과 경기 수원·고양·용인·화성이 인구 100만명을 넘겼으나 광역시가 되지 못했다. 경남도와 경기도가 나란히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도를 대표해 온 대도시가 광역시로 승격하며 도에서 떨어져 나가면 도세(道勢)가 확 줄어들 것이 뻔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창원·수원·고양·용인·화성은 광역시 대신 ‘특례시’(特例市) 지위를 얻는 데 만족해야 했다.

19일 전남 영암군에서 ‘광주·전남 행정 통합’ 관련 공청회가 열려 김영록 전남지사(가운데)가 도민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지사 왼쪽은 우승희 영암군수, 오른쪽은 김대중 전남교육감. 연합뉴스

2024년 대구·경북 통합 논의가 봇물을 이루더니 오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선 대전·충남 그리고 광주·전남 통합 움직임에도 불이 붙었다. ‘기왕이면 서로 힘을 보태 강력한 지자체로 거듭나자’는 의도에서일 것이다. 이재명정부도 광역시와 도가 합친 이른바 ‘통합특별시’에 1년에 5조원씩 4년간 총 20조원을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놓았다. 대도시가 도에서 떨어져나와 광역시라는 문패 아래 독자 생존을 모색하던 시대는 완전히 끝났음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도와의 통합 논의가 그리 활발하지 않은 인천, 부산 그리고 울산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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