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합계출산 0.75명… 日 1.15명보다 심각
20대·50대 여성 대학 진학률 60%P 격차
韓 압축적 근대화 겪으며 세대 생애 변화
젊은 여성 고학력화에도 제도·인식 제자리
‘나처럼 살지 말라’와 ‘며느리 내조’ 사이…
결혼은 ‘포기’보단 ‘무관심·거부’의 대상
현재 日 처한 상황 15년 뒤 韓도 겪을 것
韓, 日 반면교사 삼아 함께 머리 맞대야
2024년 한국의 합계출산은 0.75명. 일본 1.15명보다 심각하다. 사사노 교수는 한국이 압축적 근대화를 겪으면서 나타난 여성의 세대 간 생애 과정 변화에 주목했다. 아시아권 출산의 대부분이 혼인 내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 내지 거부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핵심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한국 저출생의 가장 큰 배경으로 여성의 세대 간 교육 격차를 꼽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55∼64세 한국 여성은 약 20%만 대학에 갔다. 25∼34세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80%에 육박한다. 사사노 교수는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는 20%포인트가량 차이가 나는데, 한국은 60%포인트 격차”라며 “다른 나라가 3세대에 걸쳐 달성한 여성의 고학력화가 단 1세대 만에 진행되면서 젊은 여성의 선택지는 급격히 늘어난 반면, 제도나 인식이 충분히 바뀌지 않은 데서 생기는 갈등이 크다”고 진단했다.
교육·노동시장에서는 남녀가 대등하게 경쟁하는 시대이지만 육아와 가사 부담은 여전히 여성에게 가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 양육에 헌신해 온 어머니 세대가 딸에게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하면서도, 며느리에게는 내조와 돌봄을 기대하는 모순이 크게 완화되지 않는 한 한국의 젊은 여성에게 결혼은 ‘포기’보다는 ‘무관심’이나 ‘거부’ 대상이 되는 경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미래를 결정하는 대표 변수로 꼽히는 인구구조 변화, 기후변화, 기술혁명 중에서 인구변화는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영역이다.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을 15년 뒤면 한국도 분명히 겪게 된다”고 경고하는 사사노 교수는 서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아 양국 사정에 밝은 연구자이다. 현재 동아시아 저출생 현상의 국가 간 비교 연구를 위해 싱가포르에 가 있고 3월부터는 중국 베이징으로 옮길 예정인 그를 지난달 22일 화상으로 연결해 인터뷰했다.
―한국 저출생의 또 다른 원인은 뭔가.
“경제 위기 대응 과정에서 한국은 남녀 공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다. 거기에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한정된 수의 안정적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했다. 그러면서 남녀 갈등도 심해졌다. 주로 ‘남성 기간 노동자’를 지키는 방향으로 대응한 일본에선 여성의 정규직 고용 비율이 연령이 올라갈수록 낮아진다. 한국의 또 하나의 특징은 2000년대 이후 여성 정책이 빠르게 확대됐다는 점이다. 서구 사회가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겪은 변화가 한국에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셈이다. 가치관의 측면에서 20대 여성만 유독 다른 위치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그런 변화에 아직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한때 ‘N포세대’ 담론이 유행했는데,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결혼을 포기한 게 아니다. 무관심이거나 거부다. 한국에선 결혼을 하면 엄마 세대가 했던 역할이 세트로 따라온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엄마한테서 ‘나처럼 살지 말고 더 자유롭게 살라’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결혼 후에는 시댁과의 관계 유지 및 자녀 교육 책임이 부여되는 구조가 남아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서로 간의 비교, 결혼 생활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콘텐츠도 독신 선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정부 정책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미 교육 수준이 높아진 세대에게 ‘옛날로 돌아가라’고 하긴 불가능하다. 부모 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딸이 아이를 낳으면 기꺼이 도와주면서 며느리한테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 한국 젊은 여성들은 처음에 출산을 기피하다 이제는 결혼마저 거부하게 된 상황이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짚고 도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일본 저출생 정책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일본이 잘못했던 것을 통해 배울 수는 있을 것 같다. 일본은 출산율이 대체 수준(2.1명) 이하로 떨어진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런데 좋아졌나. 일본에선 그간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전제하에 서비스 지원 형태의 정책이 많았다. 가족·노동·세금 제도의 큰 틀, 즉 ‘결혼을 전제로 한 생활 안정’ 구조는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 이미 여성의 고학력화와 노동시장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기존 틀은 그대로 둔 채 필요한 부분만 약간씩 지원하는 데 그치다 보니 저출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도 시대에 맞게 가족 제도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는 몇몇 국가를 빼면 세계적 현상인데.
“농업사회에선 자녀가 곧 노동력이었다. 사회복지를 대신해 부양·돌봄을 제공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자녀가 많을수록 좋았다. 지금은 자녀가 일방적 투자 대상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발생하는 일·가정의 ‘이중 부담’이 출생률 감소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북유럽 사례를 근거로 남성의 가사·육아 참여 확대가 출산율 회복의 열쇠로 이해됐다. 다만 최근에는 북유럽에서도 출산율이 하락하면서 그것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요즘은 불확실성을 많이 지목한다. 정보기술(IT) 혁명, 인공지능(AI) 혁명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며 미래 일자리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우리도 걱정인데 자녀 세대는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령화가 얼마나 문제인지 체감하지 못하는 이가 많다.
“출생률이 급감한다고 해서 인구구조가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시차가 있다. 한국은 2000년 이후 출생자가 급감해 왔으니, 그때 태어난 세대가 대학에 가거나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문제가 나타난다. 저출생의 결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일본을 보면 된다. 2008년 무렵부터 인구 감소 국면에 들어서며 지방 소멸 문제가 대두했다. 인재 부족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은 현재 심각한 구인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AI가 인간 노동·생산 활동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시차가 있고 직무별 대체 가능성도 다르다. 또 소비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인구가 줄면 사회·경제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
―구인난이 그렇게 심각한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졸업 전 대여섯 곳의 회사에서 취업 내정을 받을 정도다. 청년 채용을 위해 초임을 올리는 기업도 많아졌다. 버블 세대와 이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취업 빙하기 세대는 이런 변화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보인다. 그들이 취업할 땐 문턱이 높았고 임금 정체도 겪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집중 문제는 어떤가.
“한국은 서울·상위권대 중심의 피라미드 구조 하나뿐이다. 일본은 도쿄 외에도 각 지역에 작은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교토나 오사카의 우수한 학생들이 전부 도쿄대에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지방의 대학을 나와 해당 지역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구조는 남아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일본도 지역 거점 도시 외에는 심각한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다.”
―한·일이 저출생 등 공통 과제에 관한 당국 간 협의체를 꾸린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은 2040년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고령화를 먼저 경험했고 개호(돌봄)보험, 연금개혁 등 정책적 대응 사례가 많아 참고가 될 것이다. 사회복지 재원을 노인에게 투입하는 게 한계에 부딪힌 일본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다. 함께 머리를 맞대면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창의적이고 세밀한 정책 사례까지 비교·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나가레야마라는 지바현의 도시는 출산율과 육아세대 유입이 크게 늘었다. 도쿄로 출퇴근하는 부모가 자녀를 전철역 주변까지만 데려가면 보육원까지 등·하원을 대신 책임져 주는 보육스테이션 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서로의 시행착오와 성과를 비교하며 배우는 협력이 저출생·고령화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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