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간 한·중 사실상 소통 중단
이재명정부 들어서 기류 변화 주목
中은 한국이 美와 동맹 유지 인정
중국의 전략적 이익 훼손은 안 돼
전자입국 ‘중국 대만’ 표기 고무적
‘하나의 중국’ 원칙 확고한 지지 기대
양국 문화 교류 등 회복 가능성 커
유학생 등 늘면 관계 더 튼튼해질 것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중국은 한·중 관계를 다시 계산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중국이 바라보는 한·중 관계의 출발점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은 여전히 ‘옮겨갈 수 없는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 파트너’다. 하지만 이 전제가 실제 관계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신뢰라는 조건이 반드시 충족돼야 한다는 점 역시 중국은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전 10여년간 한·중 관계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와 대만 문제 언급 등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면서 신뢰가 크게 훼손됐고, 전략적 소통 역시 사실상 중단됐다.
중국이 주목하는 변화는 외교노선의 조정이다. 중국은 이재명정부가 한·중 관계를 미·중 전략 경쟁의 하위 변수로만 두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특히 대만 문제를 둘러싼 태도 변화는 중국이 관계 회복 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다.
황르한(黃日涵) 중국 화차오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현실을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그 동맹이 중국을 겨냥한 구조로 확장되는 데 대해서는 명확한 경계선을 긋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훈풍을 맞은 한·중 관계는 어디까지 회복될 수 있을까. ‘관리 가능한 안정’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단계적 개선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 지난달 10일 베이징에서 황 교수를 만나 중국에서 바라보는 한·중 관계의 현실적 상한선 등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황 교수와의 일문일답.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을 어떻게 평가하나.
“여러 해 만의 방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문재인 전 대통령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이뤄진 방문인데,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고 실질적인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한다. 중국 내 반응도 눈여겨볼 만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다양한 논의가 있었고, 셀카 장면이나 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 방문 같은 장면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요소들은 단순한 외교 일정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본다.”
―중국은 한국의 외교적 선택에서 더 높은 유연성을 기대하고 있는가.
“중국은 이재명정부의 외교적 유연성에 대해 윤석열정부 시기보다 훨씬 높은 기대를 갖고 있다. 먼저 한국이 전자입국시스템에서 ‘중국 대만’(中國臺灣)이라고 명확히 표기한 점을 최근 20년간 한국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가장 분명한 입장을 밝힌 사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실용 외교의 표현으로 보고 이를 지지한다. 중국 측은 한국 정부가 동맹을 제도화해 중국을 견제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며, 대만 등 핵심 이익 사안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지켜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문화 교류는 회복될 수 있나.
“관계가 개선된다면 문화 교류도 점진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문화는 정치·외교보다 민감도가 낮지만, 동시에 관계의 온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최근 한국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이정재와 전지현이 출연한 영화 ‘암살’을 다시 본 것도 그런 맥락이다. 중·한 관계가 나빠지면서 영화와 드라마 교류가 갑자기 끊긴 것은 양국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관계가 안정되면 문화 분야는 비교적 빠르게 회복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본다.”
―한국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 시각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대통령이 강조한 실용 외교와 균형 외교가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외교·안보 정책의 기초로 삼고 있지만, 그 동맹이 중국과의 경제적·전략적 이익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이 한국의 경쟁자가 된 영역도 분명히 존재한다. 전기차나 신에너지 분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협력 공간도 여전히 크다. 중국의 스마트 주행 기술과 한국의 제조 역량을 결합해 제3국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은 충분히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최근 중국에서는 첨단기술을 국가안보 논의 틀에 포함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배경을 어떻게 보나.
“중국에 ‘첨단기술 전반을 국가안보 체계에 포함시킨다’는 식의 단일한 공식 선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보면, 기술과 안보가 분리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 과거에는 기술 문제가 주로 산업 정책이나 경제 관리 차원에서 다뤄졌지만, 최근에는 중·미 전략 경쟁이 심화하면서 기술 이슈가 안보와 함께 논의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미국이 반도체, 알고리즘 같은 분야를 국가안보 틀 안에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배경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 역시 일부 핵심 기술, 특히 알고리즘과 데이터 관련 분야에 대해 정책 조정을 하고 있다. 이것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중국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기술 유출이나 불공정한 제약을 겪지 않도록 기업의 합법적인 이익을 보호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궁극적으로는 중국 기업의 국제화가 보다 안정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은 미·중 경쟁이 결정적 계기였나, 아니면 이전부터 누적된 흐름이었나.
“두 가지 요소가 함께 작용했다고 본다. 하나는 장기적인 법치화 건설의 흐름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법과 제도를 정비하면서 기업 활동의 규칙을 명확히 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기업이 해외로 진출할수록 법적 기반과 제도적 보호가 더 중요해지기 때문에,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다.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필요다. 미국이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강한 압박 정책을 펼치면서 중국 내부에서도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인식이 커졌다. 그 결과 핵심 기술과 알고리즘, 데이터와 관련한 보호 필요성이 현실적인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즉, 제도적 축적 위에 중·미 경쟁이라는 외부 환경이 겹치며 정책 변화가 가속화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기술 봉쇄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했다는 말이 있다. 동의하나.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평소 과학기술 분야 인사들과 교류가 많은데, 이들이 느끼는 위기의식과 문제의식은 상당히 크다. 반도체, 인공지능(AI) 같은 분야에서 ‘남에게 기대기 어렵다’는 인식이 분명히 자리 잡았다. 지난해 생성형 AI 딥시크(DeepSeek) 사례처럼 일부 분야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도 나타났다. 이런 변화는 외부 압박이 내부 동력을 자극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것이 곧 글로벌 협력이 불필요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의 기술 수준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지만, 세계 최고 수준과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기술 발전의 속도와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제 협력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본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긴장 고조를 구조적 변화로 보나, 관리 국면의 강도 상승으로 보나.
“중국의 대만 정책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주요 목표는 여전히 평화통일이다. 이 점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최근 긴장이 높아진 것은 대만 지도부가 반복적으로 도발적인 행보를 보인 데 따른 대응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를 구조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리 국면 안에서 긴장의 강도가 일시적으로 높아진 측면이 크다고 본다. 중국 입장에서는 기존의 원칙과 목표를 유지하면서,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한·중 관계 측면에서 어떻게 보고 있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입장은.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며, 대화를 통한 협의로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을 악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행동에도 반대한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의 장기적 안정이라는 근본 이익에 부합하며, 이는 중국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중요한 전제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단계적 신뢰 구축’ 대북 정책과 개성공단 재가동 계획은 남북과 중국 3자 협력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남북관계 완화는 한반도 군사적 대치 위험을 낮추고, 중국의 주변 안보 환경에도 안정 요소로 작용한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제로섬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은 대북 영향력과 남북관계 개선이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고 본다. 중국은 남북 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지하며, 동시에 북한과의 정상적인 국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양립 가능하다고 본다.”
―요즘 국제 정세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세 글자로 정리할 수 있다. 난(亂), 변(變), 투(鬪)다. 국제 질서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고(亂), 힘의 구조와 기술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變), 국가 간 경쟁과 게임이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鬪)는 의미다.”
―중장기적으로 한·중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교육과 인적 교류가 핵심이라고 본다. 교육은 단기간 성과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관계를 가장 안정적으로 만든다. 최근 중국 유학생들이 말레이시아로 많이 가는데, 말레이시아에는 이미 7만명이 넘는 중국 유학생이 있다. 한국은 교육 수준이 높고 대학 경쟁력도 있다. 만약 한국에 중국 유학생이 대규모로 유입된다면, 그것 자체가 새로운 협력 기반이 될 수 있다. 관광과 미디어 교류도 중요하다. 서로 더 자주 오가고, 직접 보고 경험해야 오해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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