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잔소리보다 무서운 ‘수익률 비교’
“사촌 형이 3년 전에 SK하이닉스 주식을 사놔서 지금 돈을 많이 벌었다더라고요. 이번 설에 친척들이 모이면 다들 그 이야기 할 텐데 솔직히 배 아플 것 같아요.”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정모씨는 14일 다가오는 설 풍경을 예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씨는 지금껏 주식투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코스피가 무섭게 오르며 주위 사람들이 속속 주식시장에 뛰어들자 올해 소액이나마 투자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부 수익을 내긴 했지만, 이미 코스피가 많이 오른 데다 투자금 자체도 많지 않아 수익률은 아직 제자리다.
정씨는 “이번 설에 사촌 형을 포함해서 다들 무슨 주식을 사서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만 할 텐데 그동안 나만 돈을 못 벌고 있었단 생각에 자괴감이 들 것 같다”며 “더 공격적인 투자를 위해 은행에 넣어둔 목돈을 활용할까 고민 중”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새해 ‘오천피’(코스피 5000)를 달성한 한국 증시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다가오는 설 연휴 ‘밥상머리’에서도 주식투자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친지들이 예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거침없는 ‘수익 인증’이다. 옛 속담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 삼성전자 주가가 올라 투자 원금의 2배를 벌었어”, “OO는 SK하이닉스에 투자해 차를 바꿨다던데”라는 친척들의 한마디는 아직 주식시장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수익을 내지 못한 이들에겐 극심한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는 곧 불장에 소외될까 두려운 ‘포모’(FOMO·기회상실 공포) 심리를 자극해 비이성적인 투자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차라리 취업이나 결혼, 출산 등 고전적인 명절 잔소리가 오히려 뒷맛은 덜 씁쓸할 것이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식 열풍은 광풍에 가까운 수준이다. 지난달 국내 주식 일평균 거래대금(한국거래소·넥스트레이드 합산)은 62조3000억원으로, 전월 33조원 대비 89.1% 증가했다.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하면 339.1% 급등한 수치다.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 예탁금도 지난달 27일 사상 첫 100조원을 넘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 두거나 주식을 팔고서 찾지 않은 돈을 의미한다. 국내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지난 10일 기준) 역시 1억79만개로 작년 4월 초(8945만개)보다 12.7%나 늘었다.
상승장에 올라타기 위한 ‘빚투’(빚내서 투자) 규모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었다. 지난해 7월 21조원대였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달 29일 30조원을 돌파하더니 이달 6일엔 31조원까지 넘어섰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주식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이다. 고수익을 내기 위해 무리하게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투자자들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분위기에 휩쓸린 투자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특히 섣부른 추격매수와 무리한 레버리지 투자에 대한 경계심을 당부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코스피가 이미 많이 오른 만큼, 변동성 장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은 조정을 받는 게 당연하고, 지난해처럼 대형주를 사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장이 아니기 때문에 신중한 투자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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