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시선까지 맞춘 수어 연기
3년 공들인 판소리로 완성한 인물
몇 분의 장면을 위해 배우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일까. 작품 속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기 위해 언어를 새로 배우고, 생활 방식까지 바꾸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극한의 식단으로 체중을 줄이고, 수어를 익히며, 수년간 발성과 사투리를 연마한 배우들의 노력은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 설경구, 특수분장 대신 ‘직접 늙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배우 설경구는 이전과는 다른 얼굴로 등장했다. 관객에게 낯설고도 강한 인상을 남긴 모습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를 연기하기 위해 극한의 준비를 거친 결과였다.
그는 2017년 8월8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나이를 먹어야 돼서 고민을 했다. ‘나의 독재자’ 촬영 당시에 특수 분장을 했는데 불편했다. ‘내가 한 번 늙어보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은 50대 후반을 얘기했지만 소설 속 인물은 70대”라며 “심정적으로는 70대라고 마음을 먹고 살을 뺐다. 그랬더니 목젖부터 늙어갔다”고 덧붙였다.
체중 감량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설경구는 “만약 새벽 5시에 촬영이 있으면 새벽 1시에 일어나 줄넘기를 하고 땀을 뺐다”며 “어느 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뭔가에 갇힌 듯한, 폐쇄공포증이 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또 “68kg까지 체중을 재고 그 뒤로는 숫자에 매달릴까 봐 무게를 재지 않았다”고 전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더 구체적인 준비 과정도 공개됐다. 설경구는 “첫 촬영이 대전에서 시작이었다. 촬영이 가까워오니까 너무 긴장되고 불안해서 5일쯤 전에 대전에 먼저 도착해서 모텔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자진 감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라면 2개, 참치 통조림, 전기포트 들고 가서 하루에 라면 반 개를 먹고 5일을 버티니 살이 빠져 있더라”고 밝혔다.
특수분장을 배제한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자칫 부자연스러울 것 같아 배제했다”며 “선택할 게 얼굴에 기름기를 빼고 실제로 늙는 방법밖에 없더라”고 설명했다.
또 “‘살인자의 기억법’부터는 캐릭터의 얼굴에 관심이 가게 됐다”며 “이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병수라는 인물의 나이와 얼굴, 쇠약한 분위기까지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 노윤서, 3개월 수어 연습…표정까지 바꿨다
영화 ‘청설’에서 배우 노윤서는 수어로 감정을 전달하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촬영 전부터 이어온 연습이 인물 표현에 깊이를 더했다.
노윤서는 해당 작품을 위해 약 2~3개월간 수어 연습에 집중했다. 작품에서 함께 수어로 소통하는 인물을 연기한 홍경, 김민주와 함께 수어를 배웠다. 단순히 동작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표정과 시선까지 맞춰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까지 익혀 나갔다.
준비 초반에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노윤서는 2024년 10월31일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거라 생각해서 부담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어교육원에 못 가는 날에는 홍경, 김민주와 연습실을 따로 잡아서 연습했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표정이 수어의 70%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수어도 표정을 달리하면 의문문이 되기 때문에 행동과 표정이 중요한 언어”라고 설명했다.
또 “찍기 전에 두세달가량 연습하면서 배우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선생님들과 밥도 먹으면서 실제로 수어로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접했다”고 밝혔다.
표현의 디테일에도 공을 들였다. 노윤서는 “표정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그 부분이 크게 드러났다”며 “자연스러운 동작을 얻어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수어 동작뿐 아니라 시선과 표정까지 함께 맞추는 데 시간을 들였고, 이러한 노력은 화면에 고스란히 담기며 인물의 감정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 김태리, 3년 쏟았다…판소리로 완성한 ‘윤정년’
tvN 드라마 ‘정년이’에서 배우 김태리는 국극 배우 윤정년을 연기하며 판소리를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김태리는 해당 작품을 위해 약 3년간 소리 연습에 매진했다. 2021년 출연 제의를 받은 뒤 판소리 수업을 시작해 촬영 전까지 꾸준히 훈련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소리뿐 아니라 무용과 무대 연기, 사투리까지 함께 익히며 국극 배우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김태리는 ‘정년이’ 관련 서면 인터뷰에서 “소리 연습은 2021년 4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약 3년 정도 한 것 같다”며 “소리, 춤, 사투리, 국극 무대 연습을 촬영 기간 내내 이어갔다”고 밝혔다. 이어 “정년이는 무에서 유로 가는 인물이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준비 과정은 작품에서 결과로 드러났다. 극 중 창과 발성은 물론, 남성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중성적인 목소리와 동작까지 화면에 담겼다. 김태리는 인물의 말투와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율하는 데에도 시간을 들였다.
음악감독 장영규도 김태리의 연습 과정을 언급했다. 그는 2026년 1월2일 방송된 KBS2 ‘더 시즌즈 – 10CM의 쓰담쓰담’에서 “‘정년이’ 방영 3년 전부터 김태리씨가 판소리 레슨을 시작했다”며 “태리씨가 정말 판소리를 사랑해서 어느 순간 즐기는 단계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판소리는 하기 어려운 음악”이라며 “‘이게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 같다. 어려운 작업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단계까지 가서 잘 마무리가 됐다”고 밝혔다.
장기간의 연습을 거쳐 김태리는 윤정년이라는 인물을 완성했고, 이 작품으로 제61회 백상예술대상 방송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배우들은 짧은 장면을 위해 수개월에서 수년에 이르는 시간을 쏟아붓는다. 보이지 않는 노력의 과정이 결국 화면 속 인물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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