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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쓰던 ‘신상녀’ 300원에 ‘덜덜’…서인영 “명품백 대신 가계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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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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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시절 뒤에 남겨진 차가운 기록. 허영을 걷어내고 데이터와 싸우는 실무자로 변모한 서인영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추적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돈을 썼다. 통장에 잔고가 없어도 신상은 사야 했다.” 서인영이 방송에서 직접 뱉은 이 고백은 찬란했던 시절 뒤에 가려졌던 차가운 영수증이다. 전성기 시절 그가 취향과 허영을 채우려 허공에 뿌린 금액은 본인 추산으로도 족히 100억원에 달했다.

소비의 상징이었던 과거(왼쪽)와 실무적 깊이를 고민하기 시작한 과도기적 기록(오른쪽). 화려한 수식어를 걷어내고 한 인간의 본질이 변모하는 과정의 시작점이다. 얼루어 제공·세계일보 자료사진
소비의 상징이었던 과거(왼쪽)와 실무적 깊이를 고민하기 시작한 과도기적 기록(오른쪽). 화려한 수식어를 걷어내고 한 인간의 본질이 변모하는 과정의 시작점이다. 얼루어 제공·세계일보 자료사진

 

당시 그는 마음에 드는 가방이 있으면 고민 없이 전 색상을 결제했고, 신상 구두를 사기 위해 현금이 부족하면 소장품을 헐값에 처분해서라도 쇼핑백을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중독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통장의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물욕의 속도가 더 빨랐던 시절이었다.

 

한정판 구두 한 켤레에 수천만원을 지출하던 ‘신상녀’의 일상은 사실 통장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던 위험한 현금의 낭비였다. 그러나 이 위태로운 흐름은 홀로서기를 앞둔 시점의 여러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강제로 멈춰 섰다. 정적이 찾아온 거실에서 서인영은 명품 가방 대신 편집기를 집어 들었다. 전문 인력에 의지하던 관성을 버리고 스스로 컷 편집과 자막 검수를 익히며 유튜버라는 냉혹한 1인 미디어 시장에 직접 몸을 던진 것이다. 눈부신 스타의 외피를 벗고 콘텐츠의 생산 공정을 밑바닥부터 파고든 이 선택은 그를 단순한 출연자가 아닌 ‘수익의 설계도’를 직접 그리는 실무자로 개조했다.

 

2021년 본격적인 홀로서기 이후, 그는 누군가 짜놓은 판 위에서 추는 춤을 멈추고 데이터와 싸우는 집요한 기획자의 길을 택했다. 사실 이러한 현장형 기질은 과거 활동 당시 강렬한 이미지 이면에 늘 숨겨져 있던 그의 본능이었다. 단순히 얼굴만 비추는 유튜버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는 동대문 밤시장을 돌며 원단을 체크하고 광고주와 단가 10원 단위까지 조율하는 협상가로 자신을 갈아끼웠다. 명품 매장이 아닌 창고형 할인매장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그의 반전 모습에 대중은 열광했다. 자막 한 줄까지 본인 확인 없이는 올리지 않는 깐깐함이 그를 프로 제작자로 탈바꿈시켰다.

 

노동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서인영은 손수 업체 미팅을 진행하며 단가를 조정하고 밤샘 편집으로 시력이 떨어지면서도 마우스를 놓지 않았다. 킬힐을 신고 무대를 누비던 에너지는 이제 엑셀 숫자를 맞추고 도달률을 분석하는 사업가적 기질로 옮겨갔다.

2011년 ‘론치 마이 라이프’ 방송을 통해 이미 제작 공정의 밑바닥을 경험했던 서인영의 집요한 현장 기질. 저 시절의 독기는 데이터와 수익 구조를 설계하는 비즈니스적 감각으로 전이됐다. Mnet 캡처
2011년 ‘론치 마이 라이프’ 방송을 통해 이미 제작 공정의 밑바닥을 경험했던 서인영의 집요한 현장 기질. 저 시절의 독기는 데이터와 수익 구조를 설계하는 비즈니스적 감각으로 전이됐다. Mnet 캡처

 

단순히 영상을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런칭과 공동구매 시장까지 발을 넓히며 수익 구조를 다각화했다. 발품을 팔아 검증한 제품들이 ‘완판’ 행진을 이어가자, 업계에서는 그를 향해 “연예인 서인영보다 사업가 서인영이 훨씬 매섭다”는 평가까지 쏟아졌다.

 

이혼이라는 개인사의 아픔 속에서도 서인영은 감정에 매몰되는 대신 카메라 렌즈에 눈을 돌렸다. 무너진 일상을 재건하기 위해 선택한 유튜브에서 첫 수익으로 고작 300원이 찍힌 성적표를 받아 들고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100억원을 버렸던 손으로 300원을 벌어보는 경험은 그를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개조했다. 이제 그 300원의 시작은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런칭과 공동구매 완판 행진이라는 거대한 수익 구조로 확장됐다. 300원의 가치를 깨달은 순간 수천만원짜리 가방이 주는 쾌락은 먼지처럼 가벼워졌다.

 

예전의 서인영이 타인의 칭찬에 취해 살았다면 현재의 서인영은 자기 통장에 찍히는 자본의 무게를 믿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일상의 사소한 숫자에서도 증명된다. 노동의 대가를 아는 지금의 그는 배달 음식 대신 장을 봐서 요리를 하고 지출을 막기 위해 가계부를 쓴다. 수천만원을 고민 없이 결제하던 손으로 이제는 100원 단위의 물가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짠순이가 됐다. 돈은 버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린 실패 끝에 배운 것이다. 이러한 자기 객관화는 서인영이라는 브랜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대중의 신뢰도를 높이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100억원의 허영이 사라진 자리에는 노동의 가치를 아는 경영자의 일상이 남았다. 그의 서사는 현재 쇼핑백의 브랜드가 아닌 통장 잔고의 실체 위에서 흐른다. 서인영 인스타그램
100억원의 허영이 사라진 자리에는 노동의 가치를 아는 경영자의 일상이 남았다. 그의 서사는 현재 쇼핑백의 브랜드가 아닌 통장 잔고의 실체 위에서 흐른다. 서인영 인스타그램

 

서인영은 이제 “과거의 쇼핑백보다 오늘의 통장 잔고가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 설계된 이미지에서 탈피해 결과물을 책임지며 얻은 경제적 자유인 셈이다. 그의 통장에 찍힌 숫자는 단순한 액수를 넘어 삶의 주도권을 완전히 회복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꼭대기에서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수식어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텨낸 노동의 힘이었다. 이별의 상처와 세상의 오해 앞에서도 서인영은 도망치지 않았다. 무대 조명 대신 모니터 불빛 아래서 팬들을 위해 영상을 빚는 그의 기세는 지금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확실하다.

 

데뷔 후 20년 넘게 겪은 온갖 소동을 밑거름 삼아 그는 어느덧 자기 인생의 명확한 주인으로 우뚝 섰다. 100억원을 써버렸던 신상녀는 가고 그 자리에는 스스로 가치를 일궈낸 경영자가 서 있다. 그의 진짜 이야기는 잡음이 사라진 데이터 위에서 비로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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