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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숨어 사담이나 나누는 똥배우들” 86세 박근형의 거침없는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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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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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제로에서 시작하는 86세 현역, 대접받으려 드는 순간 품격은 무너진다

대한민국 현역 최고령 배우 중 한 명인 86세 박근형의 카리스마는 여전히 촬영장을 압도한다. 젊은 시절 은막을 호령하며 ‘백마 탄 왕자’의 대명사였던 그가 나이가 들수록 가장 경계하는 것은 과거의 영광에 갇혀 대접받으려는 특권의식과 자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그는 대접받으려 드는 순간 노년의 품격은 무너진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과거라는 특권과 자식이라는 집착을 내려놓고 86세의 나이에도 매일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이것이 그가 현역 최고령으로 롱런하며 증명하고 있는 거장의 원칙이다.

연기 인생 60년, 여전히 매 작품마다 백지상태로 돌아가는 배우 박근형. 아레나 옴므 플러스 제공
연기 인생 60년, 여전히 매 작품마다 백지상태로 돌아가는 배우 박근형. 아레나 옴므 플러스 제공

박근형은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즘에는 스타만 있고 배우는 없다”라고 일침을 가하며 내실을 잃어가는 세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가 꼽는 진정한 프로는 일찍 현장에 나가 동료 및 스태프와 끊임없이 호흡을 맞추며 작품에 스며드는 이들이다. 반면 대기실용 차량에만 숨어 지인들과 사담으로 시간을 때우는 나태함을 향해 “똥배우”라는 독설을 주저하지 않는 배경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 때문에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이번에 함께 하는 후배는 똥배우가 아니냐”라는 기자들의 짓궂은 질문이 쏟아지지만, 박근형의 시선은 언제나 본질을 향한다. 그가 타인의 안일함에 이토록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대접받고 싶다는 권위의식 때문이 아니다. 왕년에 어땠는지를 읊어대는 권위는 스스로 내려놓은 채, 오직 프로의 책임감만을 묻는 것이야말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노년의 품격을 지키는 그만의 엄격한 기준이자 오랜 신념이다.

 

자식의 미래를 부모가 대신 책임지겠다는 오만을 경계하는 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연극 무대 바닥에서 무명 시절을 견뎠던 거장의 경험과 달리 경영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음악의 길을 택한 아들 박상훈의 출발은 부모의 그늘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이 박근형의 철칙이었다. 박근형이 아들의 데뷔를 완강히 반대한 이유는 명확했다. 부모의 이름값에 기대는 순간 프로로서의 자생력은 사라진다는 냉혹한 진단이었다.

 

결국 아들은 본래 성씨 대신 ‘윤상훈’이라는 예명으로 독자적인 경로를 택했다. 박근형은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어떠한 경제적 지원이나 인맥도 보태지 않았다. 자식에게 의지할 배경을 마련해 주는 과보호 대신 홀로서기를 독려하는 것이 부모의 진짜 역할이라는 가치관에 따른 행동이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거장이 스스로 다져온 고독한 밑바닥의 시간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거장이 스스로 다져온 고독한 밑바닥의 시간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근형이 이토록 자립을 강조한 배경에는 직접 겪은 긴 무명 시절의 결핍이 있었다. 그는 1963년 KBS 공채 탤런트 3기로 데뷔했으나 열악했던 당시 드라마 제작 환경에 쓴소리를 고집하다가 방송국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서구적인 외모 탓에 악역만 전전해야 했다. 연극 활동만으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했던 1967년에는 결국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전북 정읍으로 낙향하는 좌절을 겪었다.

 

낮에는 부모의 여관 경영을 돕고 밤에는 무위의 시간을 보내며 공백기를 거치던 청년 박근형을 다시 깨운 것은 무대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결국 현업으로 복귀한 그는 1968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거머쥐며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밑바닥에서 제 힘으로 일어섰던 성공의 기억은 그의 인생관을 결정하는 확고한 기준이 되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재산을 미리 물려주는 부모들이 노년에 위기를 맞이하는 세태 속에서 그가 아들과 정서적 거리두기를 유지한 이유 역시 스스로 그 혹독한 과정을 거치며 얻은 교훈에서 나왔다.

 

박근형의 연기 인생을 완성하는 바탕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켜내는 빈틈없는 자기 관리와 규율에 있다. 그는 지금도 촬영장에 남들보다 무조건 1시간에서 2시간 먼저 도착해 대본을 분석하며 준비를 마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장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프로의 무게를 증명하는 그에게 타협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엄격한 원칙주의자라는 표정 아래 가족을 향한 묵묵하고 한결같은 헌신. 세계일보 자료사진
엄격한 원칙주의자라는 표정 아래 가족을 향한 묵묵하고 한결같은 헌신. 세계일보 자료사진

촬영장에서는 누구보다 깐깐한 원칙주의자로 통하지만 가정에서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과거 아내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힘겨운 항암 치료를 이어가던 당시 그는 해외 촬영지에서도 빠짐없이 안부 전화를 걸어 상태를 살폈다. 타인에게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그가 가족에게는 세심함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챙기는 그의 변함없는 생활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런 자기 절제는 그의 확고한 연기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배우는 늘 제로에서 시작해야 한다.” 박근형이 고수해 온 이 철학은 단순한 연기론을 넘어선 그의 생활 방식이다. 과거 공식 석상에서 후배 교육에 대해 거침없는 직언을 던진 일화는 그의 완벽주의가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당시 그는 기술적인 연기 테크닉보다 배우가 현장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와 책임감을 강조하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매서운 평가는 타인이 아닌 본인을 향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더 엄격했던 그는 오늘도 작은 배역 하나를 맡으면 대본이 닳을 때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거장의 자리를 지킨다.

기록이 아닌 태도로 증명하는 거장의 품격, 그가 86세 현역을 지키는 이유. 파크컴퍼니 제공
기록이 아닌 태도로 증명하는 거장의 품격, 그가 86세 현역을 지키는 이유. 파크컴퍼니 제공

조명이 꺼진 뒤에도 일상의 궤도를 유지하는 박근형의 삶은 노년의 평화가 우연이 아닌 지속성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대중에게 비치는 서늘한 카리스마 뒤에는, 나이를 핑계 삼지 않기 위해 그가 감당해 온 세월의 깊이가 자리 잡고 있다. 노년의 성취는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86세인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을 지키며 스스로 품격을 증명하는 거장의 고집스러운 행보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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