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폭행·협박 있는 강간 단 7%…‘비동의 간음죄’ 이번엔 통과될까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구예지 기자 sunrise@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피해자가 성관계 거부 의사를 75차례나 표현했음에도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헌법재판소 재판소원 청구를 통과하면서 최협의설을 벗어난 전향적 판단이 나올지 주목된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역시 정부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비동의 강간죄 입법 협의 중”이라며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성계는 ‘비동의강간죄’의 신속 입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동의없는 성폭력 관련 재판소원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동의없는 성폭력 관련 재판소원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19일 ‘동의 없는 성폭력’에 선고된 무죄판결을 취소해달라고 피해자가 청구한 재판소원이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본안심사에 회부됨에 따라 비동의 강간죄 입법 필요성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 사건 피해자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으로부터 2022년 유사강간 피해를 당했다. A씨는 사건 당시 상황을 녹음했고 75차례 이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1·2심 법원은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한 사실이 확인되지만 피해자가 동의하는 것으로 피고인이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고,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없었다’는 취지로 무죄판결을 했다.

 

◆폭행·협박 있는 강간 단 7%…현행법, 90% 피해자 부정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법원은 항거 불능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강간이 성립한다고 본다. 피해자 역시 폭행·협박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저항해야 한다. 단순히 ‘싫다’고 말하는 것으로 ‘거부했다’고 보지 않는다. 이를 ‘최협의설’이라고 한다.

 

이는 실제 사건과 동떨어졌다는 게 여성계의 설명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9년 1월~3월 강간 및 유사강간 상담통계(66개 상담소 1030사례) 분석 결과,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 발생한 강간이 71.4%였다. 또한 2022년 한 해 강간, 유사강간, 준강간 상담통계(119개 상담소 4765사례) 분석 결과에선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강간 상담이 62.5%였다. 형법은 폭행·협박이 있어야 강간으로 보지만 실제로 이를 동반한 경우의 수는 적은 것이다.

 

한편, 2022년 여성가족부 ‘성폭력 안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성추행 피해를 겪은 상황을 복수응답으로 물었을 때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2.7%, 7.1%에 그쳤고, ‘가해자의 속임수’가 34.9%로 가장 높았다. ‘갑자기’ 26.6%, 강요에 의해 18.7%, 가해자가 자신의 지위(권한·위력)를 이용해서가 16.2%였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202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강간 상담 218건 중, 폭행이나 협박이 전혀 없었던 경우가 70.2%에 달했다. 반면, 현재 법원 판례상 강간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최협의의 폭행·협박’ 사례는 단 7.3%에 불과했다”며 법과 현실의 극심한 괴리를 밝혔다. 현행법 체계 아래서는 약 90% 이상의 성폭력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그것은 성폭력이 아니다’라며 법적 구제를 거부당하는 부작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성폭력, 성(性)아닌 폭력에 집중해야…사법부, 동의 여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어”

 

여성계는 헌법재판소의 전향적 판단을 촉구했다. 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 공동대표)은 “법적으로는 논쟁이 되고 있지만 사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성폭력이 뭐냐’고 물으면 ‘동의 없는 성행위’라고 말한다”며 “사법부만 일반 상식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동의 강간죄로 무고한 가해자가 생길 것을 걱정하는데 세계의 기준을 봤을 때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정확한 법 규정을 만들면 되고 우리나라 사법부가 동의가 있었나 없었나를 판단할 능력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 센터장은 “성폭력은 ‘성과 관련된 행위’가 아니라 ‘폭력’에 초점을 둬야한다”며 “성이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자유롭기 위해서 폭력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국가가 나서서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성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해자는 이미 피해자를 자기 통제 아래 두고 있어서 폭행·협박이 필요 없다”며 “그 맥락을 재판부가 읽어내느냐는 성인지 감수성에 달렸는데 우리나라 판사 교육 과정엔 이런 게 없어서 아쉽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해자에게 ‘얼마만큼 저항했냐’고 묻는 게 아니라 가해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동의를 구했냐. 동의를 구했는지 증명해라’는 게 비동의 강간죄”라며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강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해자에게 묻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싫다는 걸 강요하는 건 ‘폭력’…스토킹·교제폭력 기준도 마련될 것

 

비동의 강간죄는 성폭력을 넘어서 스토킹·교제폭력 같은 젠더 기반 범죄 예방·처벌에도 폭넓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동의 여부’에 집중하게 되면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나’, ‘(거절했음에도) 피해자도 좋았던 게 아니냐’고 묻는 스토킹·교제폭력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친밀한 관계 사이에 발생해 폭행·협박 없이 이뤄지는 만큼 강력한 저항이 아닌 ‘싫다’는 의사표시만으로도 범죄가 인정돼야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

 

허 입법조사관은 “많은 사람들이 성폭행·교제폭력·교제살인·성매매·불법 촬영 피해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동의 여부를 가해자가 증명해야 하므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신고하고 도움을 받는 데 있어서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센터장은 “동의하지 않은 것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폭력은 안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사랑해서 강요할 수 있다고 본다”며 “비동의강간죄를 통해 친밀한 사이여도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인식이 바뀔 것이다. 그러면 스토킹·교제폭력에도 중요한 사회적 기준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의’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성범죄를 넘어 사회 구성원 사이의 전반적인 소통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비동의강간죄로 ‘동의 의사를 표명하고 서로 합의를 형성한 후 실제로 이행하는 것까지 다 동의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면 성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면서 하는 여러 가지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동의’가 무엇인지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피니언

포토

송혜교, 우아한 미모
  • 송혜교, 우아한 미모
  • 경리, 화이트룩 입고 능소화 아래 한 컷
  • 고준희, 쇼트커트가 '찰떡'…화려한 비주얼
  • 장원영, 사람이야 인형이야? 감탄 부른 '공주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