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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알제리, 안타까운 부정(父情)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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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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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1830년 알제리를 침략해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은 뒤 130년 넘게 지배했다. 프랑스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옛 프랑스 제국의 그 어떤 식민지보다 많은 프랑스인이 거주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프랑스어에 ‘피에누아르’(Pied-Noir)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검은 발’이란 뜻인데 알제리에 정착한 프랑스인 등 유럽 국가 출신 백인들을 뜻한다. 1920년대 어느 시점에 알제리 인구의 15% 이상이 피에누아르였다는 통계도 있다.

 

지난 17일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 J조 알제리 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에게 골을 허용한 알제리 골키퍼 뤼카 지단(왼쪽)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관중석에서 이를 바라보던 아버지 지네딘 지단(오른쪽)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약 2개월 전 얼굴을 크게 다쳐 수술을 받은 뤼카는 이날 안면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 시합에 나섰다. SNS 캡처
지난 17일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 J조 알제리 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에게 골을 허용한 알제리 골키퍼 뤼카 지단(왼쪽)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관중석에서 이를 바라보던 아버지 지네딘 지단(오른쪽)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약 2개월 전 얼굴을 크게 다쳐 수술을 받은 뤼카는 이날 안면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 시합에 나섰다. SNS 캡처

1954년 알제리 독립운동가들로 구성된 민족해방전선(FLN)이 알제리 내 프랑스 정부 기관을 일제히 공격하며 알제리 독립 전쟁이 시작했다. 8년을 끈 전쟁 기간 동안 50만명(프랑스 추산)에서 많게는 150만명(알제리 추산)이 목숨을 잃었다. 병사들의 훈련 정도나 보유한 무기 수준 모두 프랑스군이 월등히 앞섰던 만큼 희생자 거의 대부분은 알제리인이었다. 아프리카에 있던 프랑스 식민지 다수가 1960년 평화로운 방식으로 독립국이 된 반면 알제리는 전쟁이 끝난 1962년에야 독립을 쟁취했다.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54)의 고향은 알제리다. 그렇다고 지단의 조상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 알제리에 정착한 프랑스인, 곧 피에누아르인 것은 아니다. 지단의 부친은 먹고살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프랑스로 이민을 떠났다. 어린 지단은 그렇게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 정착했다. 2025년 지단의 차남이자 축구 선수(골키퍼)인 뤼카 지단(28)이 알제리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전해졌다. 뤼카는 “우리 가족은 알제리 문화를 지니고 있다”며 “할아버지도 내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 J조 알제리 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왼쪽)가 알제리 골키퍼 뤼카 지단(오른쪽)을 제치며 두 번째 득점에 성공하기 직전의 모습. 뤼카는 프랑스 축구 레전드 지네딘 지단의 아들이다. AP연합뉴스
지난 17일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 J조 알제리 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왼쪽)가 알제리 골키퍼 뤼카 지단(오른쪽)을 제치며 두 번째 득점에 성공하기 직전의 모습. 뤼카는 프랑스 축구 레전드 지네딘 지단의 아들이다. AP연합뉴스

뤼카는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 J조에 속한 알제리 대표팀의 수문장이다. 지난 17일 같은 J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로 월드컵 본선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모두의 예상처럼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가 알제리를 3-0으로 격파했다. 현역 시절의 지단보다 뛰어난 선수라는 평가를 듣는 리오넬 메시(39)가 세 골을 터뜨리며 헤트트릭의 기쁨을 맛봤다. 속절없이 연거푸 실점을 허용한 뤼카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들을 관중석에서 바라보던 지단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승부의 세계는 그저 비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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