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커리어 하이 찍고 서른에 빅리그 도전
지난겨울 미국행을 앞둔 송성문(30)이 전한 진심이다.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빅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그는 특유의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써티 루키(Thirty Rookie)’라고 소개했다.
한국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송글벙글’. 그가 웃으면 더그아웃 전체가 밝아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 팬들도 새 얼굴의 유쾌한 매력을 금세 알아챘다. 메이저리그 중계 화면에 그의 얼굴이 잡힐 때마다 현지 SNS에는 “저 소년 같은 미소를 보라”는 반응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유쾌한 미소 뒤에는 11년이라는 긴 인내의 시간이 숨어 있다.
49순위, 미친개가 되기로 했다
지난 2일 미국 시카고의 리글리 필드. 팀이 0-9로 뒤진 5회초, 선두 타자로 나선 송성문은 상대 투수의 공을 받아쳐 우측 담장 너머로 보냈다. 데뷔 33경기 만에 터진 빅리그 첫 홈런이었다. 소속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그날 3-23으로 대패했지만, 영봉패를 면하게 한 팀의 첫 득점은 그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팀이 무너져도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내고, 웃음을 잃지 않는 것. 긴 시간 동안 KBO리그에서 숱하게 반복해 온 일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2014년 겨울, 고교야구 최고 타자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은 장충고 내야수 송성문의 몫이었다. 그러나 프로의 문턱은 냉정했다.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5라운드, 전체 49순위로 넥센(현 키움)의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에서의 기다림은 길었다. 1군과 2군을 오가는 세월이 이어졌고, 상무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에도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9년 동안 확고한 주전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래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2022년 한국시리즈 3차전 패배 뒤에는 눈물을 삼키는 대신, 팀 단체 채팅방에 글을 올렸다.
“내일부터 미친개가 되겠다.”
상대를 물고 늘어지듯 악착같이 뛰겠다는 다짐이었다. 이후 ‘미친개’는 그의 투지와 허슬 플레이를 상징하는 별명이 됐다.
마침내 찾아온 ‘좋은 날’
기다림의 보상은 프로 10년 차였던 2024년에 마침내 찾아왔다.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하며 3루와 2루를 가리지 않고 내야를 책임졌다. 호쾌한 타격은 물론 21차례 도루를 시도해 모두 성공시키며 리그를 뒤흔들었다.
생애 첫 올스타전 무대를 밟았고, 스물여덟의 나이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더니 프리미어12 대표팀 주장 완장까지 찼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대표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25년, 키움 히어로즈는 가혹한 암흑기를 지나며 리그 최하위로 처졌다. 개인 성적은 빛났지만 주장 완장을 찬 그는 웃을 수 없었다. 5월 31일 두산전에서 10연패를 끊어낸 날, 송성문은 인터뷰 도중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선수들만큼이나 팬분들이 많이 힘드셨을 텐데, 힘든 시즌인데도 야구장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생글생글 웃던 얼굴에 처음으로 굵은 눈물이 흘렀다. 송성문은 주장으로서 무너지는 팀을 추슬렀고 개인적으로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완성했다. 연말 시상식에서 생애 첫 골든글러브(3루수 부문)와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다. 시상대에 선 그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되찾으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제가 작년에 프로 생활 10년 차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맞이했는데요. 지금 퓨처스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아직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선수들이 저를 보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꼭 가장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뒤에도 그는 쉽게 미국행을 결정하지 못했다. 망설이던 그의 등을 떠민 건 키움에서 함께 뛰었던 김하성의 전화 한 통이었다. 김하성은 송성문의 무명 시절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선배였다.
송성문은 김태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당시 통화를 이렇게 떠올렸다.
“하성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왜 메이저리그에 갈 생각이 없다고 하냐. 너도 충분히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라고요.”
그 한마디는 단순한 응원 이상이었다. 한때 부족했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배의 말이었기에 메이저리그는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4년 최대 1500만달러(약 222억원)에 샌디에이고와 계약하며 태평양을 건넜다.
다시 무명으로, 그리고 생존
빅리그의 벽은 높았다. 올해 초 뜻밖의 옆구리 부상으로 3월 WBC 대표팀 합류가 불발됐고, 시범경기 도중 부상이 재발하며 부상자 명단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재활을 마치자마자 구단은 그를 마이너리그 트리플A로 내려보냈다. 한국 최고의 내야수로 인정받았던 선수가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무명 선수’로 돌아간 것이다.
첫 콜업마저 온전하지 못했다. 빅리그 데뷔전은 대주자 출전에 그쳤고 방망이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채 곧바로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묵묵히 방망이를 돌렸다.
기회는 다시 왔다. 5월 초 내야진에 공백이 생기자 구단은 그를 불렀고 송성문은 메이저리그 첫 선발 출전 경기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2루타로 첫 안타를 신고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상대 팀 라인업에는 키움 시절 동료였던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있었다.
그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무기는 ‘멀티 포지션 능력’이었다. 주 포지션은 3루였지만 팀이 원하면 2루도 마다하지 않았다. 백업 내야수 역할도 묵묵히 해냈다. 주전 선수들이 복귀할 때마다 마이너리그 강등 후보가 거론됐지만, 유연한 수비력을 갖춘 송성문의 이름은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리글리 필드에서 귀중한 첫 홈런포까지 쏘아 올렸다.
오늘도 유쾌하게 웃는다
첫 홈런의 기쁨도 잠시였다. 샌디에이고는 최근 8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무너지는 팀. 그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연패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는 대타로, 대수비로 나서며 묵묵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6일 팀이 마침내 연패를 끊어낸 날, 송성문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팀이 1-0으로 앞선 7회 선두 타자로 나서 볼넷을 고르고 2루를 훔친 뒤 홈을 밟았다. 승부를 가른 4득점 이닝의 시작이었다. 8회에는 기습 번트 안타까지 만들어내며 데뷔 후 처음으로 한 경기 2도루도 기록했다. KBO 최하위 팀에서 10연패를 끊어내던 날 눈물을 흘렸던 주장은, 이제 연패를 견디는 법도, 이를 끊어내는 법도 아는 선수가 됐다.
아직 메이저리그 신인인 그의 성적은 눈부시지 않다. 언제든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무대에 서기까지 그는 11년을 버텨 왔다.
샌디에이고 팬들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SNS 댓글에는 응원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환영한다, 송!”
“이제 모든 경기에서 송의 미소를 보고 싶다.”
‘행복한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믿었던 서른 살의 루키는 이제 자신의 야구로 그 말을 증명하고 있다. 11년을 버티게 한 그 미소는 오늘도 더그아웃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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