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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틈 없는 액션… 156분 ‘롤러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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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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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신작 ‘호프’ 15일 국내 개봉

“시각적 쾌감” “난삽한 잡탕”
칸 영화제서도 호불호 갈려

한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
밤 촬영 없앤 공포연출도 눈길

나 “개봉 직전까지 편집 매진”
시간 4분 줄이며 완성도 전념

5월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공개됐을 때 보기 드물게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압도적 시각적 쾌감”이라는 극찬과 “잡탕 같은 난삽함”이라는 혹평이 맞섰다. 아트하우스 영화가 주를 이루는 칸 경쟁부문에 액션으로 밀어붙이는 SF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질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거센 반응이었다.

영화제라는 특수한 무대를 벗어나 15일 국내 극장에서 대중 관객과 만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열광하거나 질색하거나 하는 양자택일. ‘호프’는 그 중간지대를 허락하지 않는 영화다. 영화는 156분짜리 롤러코스터다. 중간중간 완만한 구간을 배치한 관광형 놀이기구가 아니라 강한 가속과 방향 전환, 거친 진동이 끝없이 이어지는 롤러코스터다. 질주를 버텨내느라 상영관을 나설 때는 피로가 몰려오지만, “다시는 타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경험담을 늘어놓게 되는 롤러코스터처럼 ‘호프’ 역시 호불호를 넘어 저마다의 감상을 덧붙이고 싶어지는 영화다.

출발점은 하나의 흔적이다. 비무장지대 인근 마을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과 마을 청년 성기(조인성) 일행은 논밭 사이 길 복판에서 소 사체를 발견한다. 맹수에게 찢긴 듯한 상처뿐, 뜯어먹힌 흔적은 없다.

정체불명의 존재를 추적하기 위해 범석은 읍내로 향하고 성기 일행은 숲으로 들어간다. 이후 영화는 마을과 숲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범석이 마주하는 것은 폐허가 된 마을과 처참한 시신들이다.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외계 생명체가 엄청난 힘과 속도로 마을을 휩쓴 뒤다. 산불 진화 작업으로 지원 인력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범석과 순경 성애(정호연)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장총을 들고 동분서주한다.

‘호프’의 공간은 둘로 나뉜다. 마을은 인간의 영역이고, 숲은 외계 생명체의 공간이다. 무장한 채 숲으로 간 성기 일행은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 된다. 이내 재앙의 근원이 숲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인간과 외계 존재 사이의 상호 몰이해는 파국을 키운다.

‘호프’의 가장 흥미로운 선택은 외계 생명체의 무대를 한국 농촌으로 옮겨놓았다는 데 있다. 외계 존재가 불시착한 곳은 서울도, 연구소도, 군사기지도 아닌 비무장지대 인근 작은 마을이다. 시대와 공간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됐지만, 반공 표어와 통신 환경 등을 통해 유신 시기 작은 농촌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외계인 영화가 어둠을 공포의 배경으로 삼는 것과 달리 이 영화에 밤 장면이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자연광을 적극 활용한 홍경표 촬영감독의 화면은 ‘농촌 SF’라는 혼종을 한낮의 현실 속 공포로 펼친다. 익숙하다기보다 낯설고, 기발하다 못해 기괴한 미학이 ‘호프’의 중심을 이룬다.

전개 방식 역시 흔한 장르 문법과 거리가 멀다. 영화는 불길한 기운을 조성하며 미스터리의 정체를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자꾸만 흐름을 교란한다. 해술(임현식)이 성애에게 들려주는 엉뚱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관객이 사건의 의미를 붙잡으려는 순간,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일부러 긴장을 흩트린다.

구체적 대사로 세계관을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움직임이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 마주한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혼란을 대사로 설명하는 대신 몸을 던지고, 달리고, 부딪히는 액션으로 전달한다.

나홍진 감독은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호프’를 “액션을 통해 스토리를 느끼게 해야 하는 영화”로 설명했다. 그는 “촬영 1년 전 스토리보드를 완성했고, 스토리보드 속 장면을 물러섬 없이 촬영하는 데 가장 많이 집중했다”고 밝혔다.

타협 없는 연출로 잘 알려진 그는 칸 공개 이후에도 후반작업을 이어갔다. 러닝타임은 160분에서 156분으로 조정됐고 일부 장면은 추가·삭제됐다. 개봉을 불과 9일 남긴 시점이지만 그는 “개봉 날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며 완성도를 향한 집념을 드러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묘한 소외감이 든다. 감독이 구축한 거대한 세계관 가운데 빙산의 일각만이 화면에 펼쳐진 탓이다. 외계 생명체의 정체는 거의 설명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를 완결하는 대신 더 큰 서사의 출발점을 암시하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나 감독은 앞서 칸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를 둘러싼 긴 내러티브를 이미 구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속편이 제작된다면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이 연기한 외계 생명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첫 관문인 ‘호프’가 관객의 선택을 받아 다음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나 감독의 신작, 할리우드 톱스타가 대거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 한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올해 최대 기대작. ‘호프’를 둘러싼 기대가 유난히 큰 이유다. 여기에 극장사 메가박스와 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를 보유한 메가박스중앙의 회생절차 개시라는 산업적 상황까지 겹쳐 ‘호프’가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HOPE)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단지 한 편의 영화라기에는 너무 많은 기대와 의미가 이 영화에 걸려 있다. ‘호프’는 15일 국내 개봉하고, 9월 북미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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