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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240억 제안도 거절”…마포고 자퇴생 ‘페이커’는 위대한 ‘우리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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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원 기자 rewonv@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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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프로 데뷔·240억 제안 거절
13년째 왕좌를 지키는 ‘페이커’

2017년 11월, 중국 베이징의 밤.

 

수만 명이 들어찬 경기장에서 한 선수가 키보드 위에 고개를 떨궜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지만 떨리는 어깨는 숨기지 못했다. 세 번이나 세계 정상에 올랐던 선수가 결승에서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무너진 밤이었다. 그의 눈물은 개최국 중국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만큼 화제가 됐다.

 

e스포츠를 몰라도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페이커’ 이상혁(30)이다.

 

e스포츠 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전설의 전당’ 초대 헌액자로 선정된 페이커. 뉴시스
e스포츠 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전설의 전당’ 초대 헌액자로 선정된 페이커. 뉴시스

 

첫 번째 목표는 돈이었다

 

어린 시절, 이상혁은 할머니와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준 사람은 할머니였다. 남동생까지 네 식구가 살던 집은 15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게임을 좋아했고, 잘했다. 너무 잘했다. 아마추어 시절 ‘고전파’라는 아이디로 전국의 게이머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압도적인 실력은 곧 프로팀의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SK텔레콤 T1 유니폼을 입은 뒤 처음에는 학교와 선수 생활을 병행했다. 하지만 세계 대회 출전과 수업을 함께 이어갈 수는 없었다.

 

“월드 챔피언십에 나가야 한다고 학교에 알렸더니 수업을 못 빼준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프로게이머의 길을 택했고 마포고에 자퇴서를 냈다.

 

게임이 ‘문화’가 아닌 ‘문제’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아이를 보는 세상의 눈에는 응원보다 걱정이 앞섰지만, 할머니만은 달랐다. 끝까지 손자의 가능성을 믿었다.

 

프로가 된 그의 첫 목표는 솔직했다. 돈이었다. 집안 형편을 생각하면 돈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데뷔했는데 월급을 200만원씩이나 주시더라고요.”


목표는 빨리 이뤄졌다. 2013년 데뷔 무대에서 리그를 대표하던 스타 선수를 제압하며 판을 뒤흔들었고, 그해 가을 세계 정상에 올랐다.

 

돈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었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했다. 명예였다. 더 많이 이기고, 누구보다 오래 정상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2015년과 2016년에도 세계 정상에 오르며 ‘왕’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왕좌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2017년 11월, 베이징에서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는.

 

데뷔 때부터 함께한 T1과의 동행을 2029년까지 이어가기로 한 페이커. 뉴시스
데뷔 때부터 함께한 T1과의 동행을 2029년까지 이어가기로 한 페이커. 뉴시스

 

240억을 거절한 이유

 

눈물 뒤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 세계 무대 진출에 실패했고, 이후에도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성기가 끝났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 시간 그의 곁에는 책이 있었다. 처음에는 소설과 역사를 읽었고, 나중에는 과학과 심리학, 뇌과학으로 독서의 폭을 넓혔다. 책을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고, 그 덕에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됐다.

 

목표도 다시 세워야 했다. 무너져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 이뤄서였다. 돈도 벌었고, 명예도 얻었다. 그래서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그는 훗날 당시의 고민을 이렇게 털어놨다.

 

“저 스스로를 위한 목표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목표라면, 계속 따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말뿐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약 240억원 규모의 제안이 왔다. 그는 거절했다. 돈보다 팀을 택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페이커. 뉴시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페이커. 뉴시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풀리기 시작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가 정식 종목이 된 첫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선수촌에서는 다른 종목 국가대표들이 그와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섰다. 게임하는 아이를 걱정하던 세상이 뒤집힌 순간이었다.

 

그해 겨울에는 7년 만에 세계 정상에 섰고, 이듬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겼다. 3년 연속 세계 챔피언. 그는 ‘우리’를 위한 목표를 세운 뒤부터 경기가 다시 즐거워졌고, 성적도 따라왔다고 했다.

 

한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페이커 이상혁. 뉴시스
한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페이커 이상혁. 뉴시스

 

빈 물병이 되려는 세계 최고

 

지난달 28일, 리그 오브 레전드 국제 대회인 MSI의 막이 오른 대전컨벤션센터는 페이커를 보기 위해 모인 팬들로 가득했다. 4000여석이 매진된 경기장에서 두 번째 세트가 끝나는 순간, 그는 대회 통산 승수를 세 자릿수로 늘렸다.

 

‘100승’. MSI 역사상 누구도 넘지 못한 기록이다.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세웠지만 그는 담담했다.

 

“승수를 쌓는 것보다 큰 무대에서 우승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함께 데뷔했던 선수들은 대부분 유니폼을 벗었다. 하지만 서른이 된 그는 여전히 세계 정상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상혁은 프로게이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로 재능도, 연습량도 아닌 겸손을 꼽는다.

 

“물병에 물이 반쯤 차 있으면 반밖에 담지 못하잖아요. 내가 비어 있는 물병이라면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만큼 더 배울 수 있어요. 그래서 겸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불사대마왕’ ‘빛상혁’ 같은 별명이 그를 따라다닌다. 그런데 그가 가장 아끼는 별명은 따로 있다. ‘우리혁’. 자신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한 사람에게, 이보다 잘 어울리는 별명이 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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