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베트남 진출 신한銀 외국계 1위
재래시장 누비며 소상공인 고객 확보
예수금 현지화·디지털 강화 체질 개선
현지은행들과 순위다툼 ‘점프 업’ 시동
우리銀, 8년간 자산·수익성 4~5배 성장
3년 내 홈론 등 리테일 60% 달성 목표
선진 기업 금융거래 확대·PB 서비스
핀테크 협업·플랫폼 강화… 질적 도약
베트남은 한국 금융기업에 ‘기회의 땅’처럼 여겨졌다. 삼성·LG전자 생산기지가 있는 데다 경제성장률이 연 7%를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실제 신한베트남은행은 베트남 1위 외국계 은행이라는 ‘성공 신화’를 써냈다. 5대 금융지주 중 해외법인 실적이 가장 좋은 신한금융그룹의 2023년 해외 손익 중 40% 이상이 베트남에서 나왔다.
최근 베트남 진출 금융사들은 기존 성과에 안주하기보다 ‘질적 도약’을 고민 중이다. 베트남 대형은행들의 공세가 거센 상황에서 외국계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현지고객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한은행은 한국에서 시장에 ‘돈통’을 끌고가 입출금하던 ‘파출수납’ 정신으로 호찌민 재래시장을 발로 뛰며 밀착형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않는다’는 모토를 베트남 기업에 적용해 신뢰를 다지고 있다. 베트남 진출사들은 “그간 2부 리그에서 기초체력을 쌓았다면 이제는 1부 리그에서 실력을 겨뤄야 하는 시점”이라며 ‘현지화 2.0’을 위해 신발끈을 조이고 있다.
◆외국계 1위 넘어 현지 은행과 순위다툼
“대출의 현지화는 됐는데 예수금은 아직 한국계 기업 의존도가 높은 편입니다. 지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려면 근본적 체질개선을 통해 예수금의 현지화가 돼야 합니다. 더 높은 수준의 현지화인 셈이죠.”
지난 7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만난 신한베트남은행 박준영 전략본부장은 향후 전략적 목표를 이렇게 밝혔다. 허정철 신한베트남은행 부법인장도 “더 분발하고 도약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지금은 다시 한 번 점프 업하기 위해 내실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금융사 해외진출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1995년 호찌민 지점을 연 이래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 역사를 함께 했다. 각종 우발 상황에 대처하며 현지 사업 노하우를 쌓다 보니 한국 진출 기업에 ‘베트남 하면 신한은행’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2017년 호주뉴질랜드은행(ANZ) 베트남 리테일(개인금융) 부문을 인수한 것은 외국계 은행 1위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2012년 700만달러이던 리테일 대출 잔액은 ANZ 통합 후 7억달러를 돌파했고 지난해 말에는 33억5000만달러(약 5조360억원)까지 불어났다. 현재 대출 자산의 65% 이상이 리테일이다. 정직원 약 2500명 중 한국 주재원은 48명에 불과할 정도로 인력도 현지화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591억원에 달한다.
신한은행은 지난 성과를 기반으로 외국계라는 ‘딱지’를 떼고 현지 은행들과 순위다툼하는 법인이 되기 위해 분투 중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베트남은 인구 1억159만명에 최근 2년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각각 7.0%, 8.0%에 달할 만큼 고속 성장 중이다. 베트남에서 ‘K금융 2.0’ 도전이 성공하면 신한의 금융영토도 그만큼 확장될 수 있다.
다만 최근 베트남 금융 환경은 녹록지 않다. 6개월 정기예금 금리가 8.8~9.0%로 조달 비용은 높아진 반면 대출 금리 상한은 제한돼 있다.
무엇보다 베트남 4대 대형은행과 견주면 국내 은행은 자산 규모부터 고객과의 친밀도까지 한계가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4대 은행 중 하나인 비엣콤뱅크는 약 45조동(2조5800억원)의 세전 이익을 올렸다. 비엣틴뱅크는 41조동(2조3500억원), BIDV(베트남투자개발은행)은 36조동(2조600억원)을 기록했다.
게다가 베트남에 신규 진출하는 한국 기업은 줄고 현지 은행은 한국 지·상사를 상대로 공격적으로 영업하면서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이다.
◆급여이체 고객 등 늘려 예수금 현지화 시도
신한베트남은행은 ‘예수금 현지화’를 위해 급여이체 고객을 늘리는 전략을 택했다. 또 자금관리서비스(CMS)를 통해 기업 결제자금을 유치하고 판매시점정보관리(포스·POS) 사업으로 약 6000개 가맹점을 확보했다.
현지 고객에 촘촘하게 접근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지역 재래시장을 발로 뛰는 영업도 시작했다. 신한은행이 과거 한국에서 시장에 ‘돈통’을 끌고 가서 입출금을 지원하던 ‘파출수납’의 정신을 베트남 현지에 이식했다. 박 본부장은 “직원이 발로 뛰면서 고객을 찾아가 신한을 알리는 차원에서, 모행에서 하던 파이팅 있는 영업활동을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의 영업점은 56개로 외국계 중에는 1위이지만, 최소 수백개 지점을 갖고 있는 현지 은행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수적인 열세는 디지털 뱅킹으로 극복하려 한다. 한국의 정보기술(IT)에 현지 특성을 접목하는 것이다. 현재 기업 인터넷뱅킹을 개선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신한은행이 가진 고유의 강점도 있다. 이 은행에서 15년간 일한 레 응옌 황란 전략본부 부장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한국 특유의 혁신정신, 외국인 고객을 위해 38개 언어 인공지능(AI) 통역 서비스를 내놓은 데서 엿보이는 고객 중심 자세를 경쟁력으로 꼽았다.
◆3년 전 30%던 리테일, 3년 후엔 60%로”
‘2~3년 안에 리테일 비중 60% 이상 달성.’ 베트남우리은행은 이 같은 공격적 목표를 설정하고 베트남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13일 우리은행에 따르면 베트남우리은행은 지난 8년간 자산 규모와 수익성이 4~5배 성장했다. 법인 설립 2년차인 2018년 총자산 8억달러대, 당기순이익 1000만달러대에서 지난해 총 자산은 32억달러 이상, 당기순이익은 5040만달러(약 759억원)로 늘며 법인 역사상 최초로 5000만달러를 돌파했다.
베트남우리은행의 강점은 삼성전자 등 한국계 제조업이 밀집한 북부 산업벨트를 선점한 것이다. 우리은행은 1997년 하노이에 한국 금융사 중 최초로 지점을 개설했다. 국내 대기업 지·상사와 협력기업이 주고객이었다. 현지 대형은행들이 더 좋은 조건으로 국내 기업을 집중 공략하면서 2022년쯤부터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우리은행은 현지 기업과 개인 고객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 8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만난 윤희준 베트남우리은행 부법인장은 “불과 3년 전까지도 여신 기준으로 리테일 비중이 30%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45% 수준까지 높아졌다”며 “중장기적으로 60~70%까지 높여 안정적인 영업 기반을 확보하려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2023년부터 홈론(주택담보대출 성격), 카론(자동차대출) 등 리테일 영업을 본격화했다. 윤 부법인장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리테일을 확장할 수밖에 없다”며 “로컬 영업이 정말 쉽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니까 되더라”고 말했다.
베트남우리은행은 각 지점마다 개인여신 전담 마케터인 RRM 제도를 운영 중이다. 자산관리 사업을 위한 기초 작업도 시작했다. 현재 베트남 은행들은 펀드·보험 등을 판매하기 힘들지만 향후 자산관리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초기 PB(프라이빗뱅킹) 서비스에 나섰다. 하노이와 호찌민 요충지 점포 5곳에 PB 브랜드인 ‘투체어스’ 공간을 만들었다. 하노이에는 현지 은행에서도 보기 드문 대여금고를 설치했다.
개인 고객 확보에 필수인 뱅킹 앱(애플리케이션) ‘WON’도 8년 만에 전면 재구축 중이다. QR(큐알)코드 송금 기능을 넣고 게임·복권 등 고객이 재미를 느낄 요소를 더하려 한다. 부족한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보완하기 위해 베트남 핀테크 회사인 잘로페이(Zalopay), 모모(Momo), VNPAY 등과 온라인 결제 서비스 등 제휴 계약도 체결했다.
기업 부문의 경우 여신 중 한국 기업보다 베트남 기업 비중이 더 높을 정도로 현지화 전략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베트남의 삼성이라고 불리는 빈(Vin)그룹이나 전력·통신 등의 국영기업을 대상으로 거액 여수신 거래도 유치했다.
윤 부법인장은 “베트남도 한국처럼 금융거래에서 신뢰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우리은행 모토가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자’여서 기업이 어려울 때 솔루션을 제공하고 같이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니 서로 신뢰가 쌓이더라”라고 말했다.
윤 부법인장은 “앞으로도 기업들에 선진 기업금융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리테일 부문에서도 현지 고객들이 안전하면서도 빠르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외국계은행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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