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일상 연애사에 2030 대리만족
적은 제작비로 시즌제… 화제성 보장
호텔 침대 소개팅에 이별 생중계까지
출연자 삶과 감정은 ‘볼거리’로 전락
연예인 지망생 출연 등 진정성 실종
KBS2 ‘누난 내게 여자야2’(5월 23일), 넷플릭스 ‘연애실험실’(6월 17일), 웨이브 ‘스탠바이미’(6월 19일), JTBC ‘연애전쟁’(6월 23일), SBS ‘자식방생프로젝트 합숙 맞선2’(6월 25일),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시즌2’(7월 7일), SBS ‘내 남은 연애’(8월 3일)…
지난 5월부터 연애·커플 예능이 지상파·케이블·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가리지 않고 줄줄이 편성되고 있다.
나는솔로·솔로지옥·하트시그널·환승연애 등 기존 ‘4대장’에 더해 채널과 플랫폼별로 연애 리얼리티 라인업을 촘촘히 갖추면서, 여름 시즌 ‘연애 예능 대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 같은 물량 공세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제작비 대비 시청률과 화제성이 확실한 장르에 편성 전략이 집중된 결과다.
최근 연애 예능의 키워드는 ‘감정의 디테일’과 ‘관계의 다층화’다. 과거 ‘어떤 커플이 맺어지느냐’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출연자들이 자신의 연애 패턴과 감정을 적극적으로 언어화하고 관계의 경계(썸·친구·전 연인·가족까지)를 넓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포맷도 크게 달라졌다. 집·합숙소·리조트 등 밀폐된 공간에서 감정을 극대화하거나, 전 연인 재회·이별 생중계·동성 간 호감 등 관계 설정을 파격적으로 확장했다. 여기에 가족과 연애·결혼·재혼 등 라이프 스테이지를 연애 서사에 겹치며 장르가 복합적으로 변주되고 있다.
‘연예인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또래·직업의 사람들이 겪는 일반 연애’가 주는 간접 경험·대리만족은 여전히 강력한 동력이다. 연애 예능 시청층은 20·30대가 과반을 차지하고, 이들은 TV보다 OTT·모바일·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부분의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들에게 연애 프로그램은 ‘직접 연애하기엔 에너지는 부족하지만, 감정은 소비하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는 장르로 기능한다.
여기에 OTT와 SNS가 결합하며 ‘2차 소비’를 만들어낸다. SNS에는 하이라이트 클립·짤·밈이 쏟아지고, 시청자들은 실시간 댓글·리뷰·리액션 영상을 보태며 출연자의 서사가 하나의 지식재산권(IP)처럼 소비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방송사 입장에서 연애 프로그램은 상당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스타급 배우와 거대 세트가 필요한 드라마와 달리 연애 리얼리티는 비교적 적은 출연료와 한정된 공간으로 시즌제 제작이 가능한 데다가 한 번 브랜드가 자리 잡으면 시즌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잉’이다. 더 강한 자극과 더 극단적인 서사로 치달으면서 설렘을 내세운 연애 예능이 설렘을 잃어가는 아이러니에 빠진 것이다. 사랑과 섹슈얼리티, 정체성, 가족 문제까지 모두 한꺼번에 예능의 자산으로 편입되면서 출연자의 삶과 감정은 볼거리로 전락했고, 침대 위 첫 만남, 동성 로맨스의 호기심 소비, 이별 생중계 등 자극적 소비만 늘어났다.
지난해 방송된 ‘환승연애4’가 대표적이다. ‘환승연애’는 헤어진 커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옛 연인을 다시 만나거나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포맷으로, 2021년 시즌1부터 설정 자체에는 논란이 있었지만 출연자들의 진솔한 속마음 덕에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환승연애4’에서는 한 여성을 두고 헤어진 전 남자친구 2명이 함께 출연하는 구조가 더해지며 진정성 논란과 특정 출연자 편애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다양한 상황 아래에서도 연인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한다’는 콘셉트의 ‘연애실험실’ 역시 첫 소개팅 장소를 호텔 침대로 결정해 방송 전부터 과도한 설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반인’을 내세웠지만 외모·스펙·직업 면에서 대중과 괴리가 큰 출연자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하트시그널’이 이에 해당한다. ‘시그널 하우스에서 펼쳐지는 청춘 남녀들의 연애를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지만, 실제 출연자 상당수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인플루언서로 채워진다. 결과적으로 시청자가 기대한 ‘일반인의 연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연예·셀럽 콘텐츠에 가까운 연애 쇼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정 소모가 극단으로 치닫는 포맷에서 출연자 보호 장치가 충분한지, 방송 이후 악성 댓글·신상털기 같은 2차 피해를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논의도 여전히 부족하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정말 인연을 찾기 위해 나올 수 있는 일반인이 없을 정도”라며 “진정성이 사라지고, 연애 쇼를 위한 ‘무늬만 일반인’ 참여자만 늘어나 공감의 여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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