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역사상 최다 우승자가 되기까지
1999년 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나토(NATO)의 폭격으로 도시는 78일 동안 불에 탔다.
열한 살 소년은 밤마다 여덟 살, 네 살 두 동생을 데리고 방공호로 내려갔다. 날이 밝으면 코트로 향했다. 전날 밤 폭탄이 떨어진 자리를 골랐다. 같은 곳에 두 번 떨어질 리 없다고 믿었다. 물이 빠진 수영장에서, 금이 간 코트 위에서 공을 쳤다.
소년이 라켓을 처음 쥔 건 네 살, 텔레비전으로 테니스를 본 뒤였다. 가족 중 테니스를 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코트로 이끈 사람은 옐레나 겐치치. 유고슬라비아 테니스의 전설적인 지도자다. 훗날 세계 1위에 오르는 모니카 셀레스를 가르쳤다. 코파오니크의 코트에서 여섯 살 소년을 발견한 겐치치는 부모에게 말했다.
“셀레스 이후로 이런 재능은 처음 봐요.”
폭격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겐치치는 소년을 코트에 세웠다. 테니스뿐 아니라 음악과 시도 함께 가르쳤다. 무너지는 도시 한복판에서.
소년의 이름은 노박 조코비치다.
폐허에서 시작된 꿈
전쟁은 가난도 데려왔다. 제재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속에 물가는 치솟았고 사람들은 빵과 우유를 사려 줄을 섰다.
부모는 베오그라드에서 네 시간 떨어진 산악 리조트를 오가며 밤낮으로 일했고 아들의 테니스를 위해 빚을 냈다. 그래도 변변한 코트 하나 없었다. 조코비치는 베오그라드 곳곳의 빈 코트를 전전하며 공을 쳤다. 아버지 스르잔은 그 시절을 “존재의 벼랑 끝”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폭격은 역설적으로 그에게서 두려움을 앗아갔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그토록 많은 죽음과 파괴를 겪은 뒤 우리는 더 이상 숨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것도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폭격이 끝났을 때 조코비치는 열두 살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독일 뮌헨행 비행기에 올랐다. 전쟁이 할퀸 나라를 떠나 테니스 하나에 미래를 걸었다.
폭격을 넘어 세계 1위로
2008년 호주오픈에서 생애 첫 그랜드슬램(테니스 4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랭킹도 정상권에 진입했다. 그러나 진짜 벽은 그다음이었다. 이후 3년간 단 한 번도 그랜드슬램 정상에 서지 못했다. 큰 무대에선 번번이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에게 막혔다.
그는 바꾸기 시작했다. 라켓을 바꾸고, 팀을 바꿨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단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그 이후로 모든 게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죠.”
2011년, 마침내 흐름이 뒤집혔다. 윔블던을 제패하며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오랜 꿈이던 두 가지를 며칠 사이에 한꺼번에 이뤄냈다.
“달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라이벌에게 배우고, 패배를 복기하다
무엇이 그를 최고로 만들었을까. 조코비치는 라이벌에게서 배웠다고 말한다.
“페더러와 나달에게 배운 게 많아요. 그들과의 승부 하나하나가 절실했으니까요.”
그는 경기가 끝나면 이겼든 졌든 철저히 되짚었다. 특히 진 경기를 다시 봤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기엔 농구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의 조언이 있었다. 조코비치는 브라이언트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회상했다.
“진 경기를 전부 보긴 힘들어도 중요한 장면만은 꼭 다시 봐야 해. 그 불편한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실수는 거기서 배우는 거니까.”
그 말은 오래 남았다. 진 경기의 찝찝함을 외면하지 않고 파고드는 것. 다음 경기에서 같은 실수를 지우는 것. 조코비치가 24번의 그랜드슬램을 쌓아 올린 비결이었다.
전설은 아직 라켓을 놓지 않았다
올해 서른아홉의 조코비치는 세계 5위다. 호주오픈 결승과 윔블던 4강에 올랐고 이달 30일 개막하는 US오픈에 나선다. 여기서 우승하면 그랜드슬램 25회.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숫자다.
“이미 다 이룬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답했다.
“가장 큰 타이틀을 놓고 겨룰 수 있는 한 계속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어요. 내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아직도 궁금하거든요.”
조코비치는 2028년 LA 올림픽에서 세르비아 국기를 든 채 코트를 떠나고 싶다고 했다.
전쟁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았지만 두려움을 내려놓는 법도 가르쳤다. 폐허가 된 코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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