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결단에서 월드컵 우승까지
200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식당. 파란 볼펜이 냅킨 위를 지났다. 열세 살 소년을 영입하겠다는, 짧은 약속이었다.
해외 축구팬이라면 익숙한 장면이다. 이 냅킨 한 장에서 리오넬 메시가 시작됐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냅킨이 경매에서 13억원에 팔렸다는 것, 그 약속을 받아낸 아버지 호르헤 메시가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는 것까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열세 살 소년이 전설이 되기까지, 아버지는 늘 그 곁에 있었다.
“계약할 건가, 말 건가” 아버지의 승부수
어린 시절 메시는 또래보다 한참 작았다.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축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다.
호르헤는 일찍부터 아들과 함께했다. 메시가 처음 공을 찬 동네 클럽 그란돌리에서 코치를 맡았고 아들의 축구를 이어갈 방법을 찾아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문제는 돈이었다. 매달 드는 치료비를 대신 감당해줄 곳이 필요했다. 바르셀로나가 그 손을 내밀었다. 열세 살 외국인 선수에게 치료비는 물론 연봉과 가족의 거처, 일자리까지 얹는 이례적인 제안이었다.
2000년 9월,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대서양을 건넜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몇 주간 테스트를 받은 뒤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
구단은 메시의 재능을 눈여겨봤지만 모두가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작은 체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결정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호르헤는 결단을 요구했다. 메시를 영입할 것인지, 아니라면 다른 길을 찾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바르셀로나의 선수 영입 책임자 카를레스 렉사흐가 직접 메시를 보러 나섰다.
경기를 지켜본 지 10분 만에 렉사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를 본 이들은 메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반대였다. 렉사흐에게는 10분이면 충분했다.
그해 12월 14일 렉사흐는 메시 측 에이전트들과 만난 자리에서 냅킨을 꺼내 그 위에 약속을 적었다. 자신의 책임 아래 메시와 계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에서 에이전트로
냅킨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그 뒤로도 아버지는 아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 정착한 뒤, 호르헤는 어린 아들과 함께 그곳에 남았다. 아내 셀리아와 나머지 가족은 고향 로사리오에 머물렀다. 가족이 흩어지는 선택이었다.
낯선 도시의 생활은 두 사람 모두에게 쉽지 않았다. 메시는 훗날 그 시절을 이렇게 돌아봤다.
“바르셀로나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방에 혼자 틀어박혀 울기도 했다. 아버지도 그랬다. 둘 다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힘들었다. 아버지가 물었다. 계속할 거냐, 돌아갈 거냐. 나는 계속하고 싶었고, 아버지는 나와 함께 남았다.”
곁을 지키던 아버지의 역할은 점차 커졌다. 호르헤는 아버지를 넘어 에이전트가 됐다. 바르셀로나 시절은 물론, 파리 생제르맹 이적도, 2023년 미국 인터 마이애미행도 그의 손을 거쳤다. 20년 넘게 아들의 축구와 사업을 뒤에서 지탱했다.
‘천재’ 메시가 훈련장을 떠나지 않은 이유
아버지의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아들은 그 믿음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성장한 메시는 2004년 열일곱 살에 1군에 데뷔했다.
함께 뛴 다니 알베스는 양쪽 신발 끈이 풀린 채로도 믿기 어려운 기술을 선보이는 메시를 보며 “장난하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타고난 재능이 전부는 아니었다. 메시는 훈련이 끝난 뒤에도 공을 놓지 않았다. 프리킥도 수없는 반복 끝에 그를 상징하는 무기가 됐다.
재능과 노력은 곧 기록이 됐다. 메시는 발롱도르를 거듭 들어 올리며 수많은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조국의 월드컵 우승이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마침내 그 숙제를 풀었다. 결승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아르헨티나를 36년 만에 정상으로 이끌었다. 세계 최고라는 이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빈칸까지 채운 순간이었다.
냅킨 한 장에서 시작된 전설
지난 6월 북중미 월드컵 알제리전. 선제골을 넣은 직후 메시는 눈물을 보였다. 힘들고 복잡한 며칠이었다고만 했다. 아버지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은 얼마 뒤에야 알려졌다. 그날 메시는 끝내 해트트릭을 완성했고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68세였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그가 받아낸 약속은 남았다. 25년 전 그 냅킨은 2024년 경매에서 76만2400파운드, 약 13억원에 팔렸다. 시작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열세 살 소년의 미래가 적혔던 그 냅킨은 그렇게 축구 역사의 한 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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