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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령실적’ 만들고… ‘보조금깡’으로 부정수급 [심층기획-줄줄 새는 공공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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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준·안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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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무경험 사업자 명의 계정 터
저가를 명품 둔갑… 수출 실적 뻥튀기
페이백 미끼로 정책 사업비 챙겨가

<하> 브로커의 혈세사냥

지원금 10∼15% 챙기며 부정수급 설계
허위증빙·보조금깡 등 수법도 교묘해져
정책자금 사업 다양해 활동 영역도 방대
매년 수조원의 국고보조금 먹잇감 전락

상반기 불법 브로커 신고 건수 총 482건
인맥 등 편승한 브로커 수요 끊이지 않아
당국, 처벌 강화 골자 관련법 개정 추진
“형식적 서류 탈피 실질적 데이터 검증 필요”

시중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000원짜리 공책 한 권. 수출 상자에 담긴 이 공책 한 권의 세관 신고 서류상 가격은 ‘140만원’이었다. 헐값의 노트가 해외로 나가는 순간 서류상으로 수백만원대 ‘명품’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 ‘수출 뻥튀기’의 목적은 단 하나, 소상공인진흥공단의 ‘혁신성장촉진자금’ 대출 요건인 ‘미화 1000달러(약 140만원) 이상 수출 실적’을 편법으로 채우기 위해서였다. 단 한 건의 가짜 수출 서류로 요건을 채운 부산 소재 소상공인 A씨는 저리의 정책자금을 손쉽게 받아냈다. 그는 이후 자신의 정책자금 부정수급 노하우를 전수하는 ‘브로커’로 변신했다.

 

A씨는 지난해 부산·경남 일대에서 자금난에 허덕이는 영세 소상공인 19명에게 “약 4%대 저리로 최대 2억원을 대출받게 해주겠다”며 대출금의 7%를 수수료로 받았다. 영세 상인을 돕는 혁신성장촉진자금 대출이 불법 브로커의 정책자금 편취 사업으로 둔갑한 것이다.

 

A씨 일당의 범죄는 세관의 정보 분석에 꼬리가 잡혔다. 세관의 활약 덕에 이들이 부풀린 수출 고가 조작 총액은 약 2000만원 정도에 그쳤지만, 대출 가능 정책자금 규모는 30억원에 달할 수 있었던 셈이다. 소액 실적 요건만 충족하면 수억원에 달하는 저리 대출이 가능하다는 제도의 허점이 이번 사건을 초래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스타트업 등의 성장을 돕기 위해 매년 수조원 규모로 집행하는 국고보조금이 ‘보조금 브로커’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1월부터 6월19일까지 ‘불법브로커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받은 신고 건수는 총 482건에 달했다. 이 중 80% 이상은 제3자 부당개입 해당 여부 문의 등 자체 처리 또는 종결 민원으로 나타났으나, 일부 건은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돼 제재 조치 및 추가 사실관계 파악에 착수한 상태다. 일부 기업인들은 브로커를 통해 정책자금 컨설팅을 진행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브로커들은 주로 자금난을 겪는 영세 사업자 혹은 중소기업에 직접 연락을 하거나 포털 블로그·카페, 텔레그램, 그리고 ‘숨고’나 ‘크몽’ 같은 프리랜서 중개 플랫폼에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정부 정책자금 100% 승인 보장’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사업주들을 유혹한 뒤 “정부 보조금은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이고 남들도 다 쓰는 방법”이라며 부정수급에 대한 경계심을 해제시키는 것이 범죄의 첫걸음이었다.

 

실제 브로커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다는 화장품 수출업체 대표 B씨는 “번호를 어디서 확보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수출바우처를 현금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취지의 얘기를 돌려 말했다. 설명을 듣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고민해 보겠다고만 하고 말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 C씨도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서는 정부 사업이 있는데 사업계획서부터 페이백(불법 환급)까지 다 서포트해 줄 테니 사업비의 10%를 달라고 했다”고 했다.

접근에 성공한 브로커는 지원금 수령액의 10~15%를 성공보수로 받는 ‘정률제’ 방식과, 단타성으로 착수금을 받은 뒤 지원금 수령 시 추가금을 받는 방식을 주로 제안했다. 이들은 수수료 청구 시 ‘경영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정식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줬는데, 법망과 사정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외형상 정상적인 B2B(기업 간) 용역 계약 형태로 포장하는 꼼수를 썼다.

 

보조금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한 뒤 컨설팅비만 편취하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5월 첫 사업을 접고 새 사업을 시작하려던 이모(33)씨는 정부지원사업 컨설팅업체 관계자로부터 600만원만 내면 사업아이템 발굴부터 특허출원, 정부지원사업 선발까지 평생 ‘풀케어’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덜컥 손을 잡았다. 그러나 계약 후 무성의한 컨설팅, 리뷰 조작 정황, 계속된 서류 탈락 등에 믿음은 분노로 바뀌었다. 이씨는 현재 컨설팅업체를 상대로 법적 분쟁 중이며 이미 업체 관계자 중 한 명은 사기 혐의로 송치됐다.

 

◆유령 실적, 페이백 등 ‘부정수급’

 

이들이 노리는 대표적인 부정수급 유형으로는 △유령 실적 만들기 △페이백 △허위 증빙 △인건비 부당 수령 △가족 간 거래 △사적 유용 등이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장 흔한 수법으로 ‘유령 실적 만들기’를 꼽았다. 수출입 경험이 없는 사업자 명의로 계정을 만든 뒤, 문구류처럼 단가가 낮아 세관의 실물 검사가 까다롭지 않은 소형 화물이나 소프트웨어 등 무형의 서비스 품목을 이용해 가짜 수출입 신고를 진행하는 것이다. 소액 수출 신고 시 통관 절차가 간소하다는 점을 악용해 서류상 실적만 수백만원 단위를 만들어냈다.

 

페이백, 이른바 ‘보조금깡’도 단골 수법 중 하나다. 브로커는 사업주와 공모해 해외 마케팅이나 기술 개발 등 정부 보조금 지원사업에 신청한 뒤, 미리 포섭한 협력업체(광고대행사, 소프트웨어 개발사 등)를 끼워 넣어 부풀린 견적서와 허위 세금계산서를 제출한다. 이후 정부 보조금이 정상 지급되면, 해당 용역업체는 실제 작업비를 제외한 차액을 사업주에게 되돌려주는 식이다.

 

지원 자격을 허위로 꾸며내는 경우도 있다. 가짜 근로계약서·유급휴직신청서 등을 써 증빙자료를 제출하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매출 실적을 조작하는 식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으로 기업들이 총 3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도운 컨설팅사 대표에게 지난해 2년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이외에도 지원서를 대신 작성해 주거나 허위로 꾸며주는 일, 주관처와 심사위원이 선호하는 형태에 맞춰 발표자료 및 대본을 맞춰 주는 일 등 정부의 보조금 및 정책자금 사업이 다양한 만큼 브로커의 활동영역도 방대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 처벌 강화 나섰지만 회의적 시선

 

정부는 브로커의 부당개입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정책자금 신청 과정에서 △허위 서류 작성·제출 △허위 서류 작성 알선 및 교사 △심사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는 거짓·과장광고 △법정 한도를 초과한 자문료 및 수수료 요구 등 제3자의 부당개입이 있었다면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중기부가 브로커의 부당개입을 확인했을 때 출석·진술·자료 제출 요구 등 권한을 부여하고 조사 불응 또는 위법행위를 확인하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할 예정이다.

 

현장의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한 정부지원사업 심사위원은 “실제 제출되는 사업계획서의 상당수가 컨설팅 회사 등 브로커의 손을 탄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지원 분야 특성상 인맥이나 네트워크의 영향이 크다 보니 브로커를 찾는 수요와 공급이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전문가들은 보조금 사업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모니터링 강화 등 보다 실질적인 관리감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호균 전남대 교수(행정학)는 “정책자금은 편법을 동원하는 일부 사업자가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소상공인과 혁신기업에 돌아가야 한다”며 “서류 중심의 형식적 심사를 데이터 기반의 실질적 검증으로 전환하고, 부정수급으로 확인될 경우에 대한 제재 강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기업이 브로커의 도움 없이도 정부사업 참여가 가능하도록 정부 인증 대행업체를 선정해 통로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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