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사치스러운 운동’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비용이 많이 드는 취미 활동이 어디 골프 하나뿐이겠느냐만 한국인들은 유독 골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대형 자연재해나 사고로 커다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또는 북한이 심각한 무력 도발을 벌인 시각에 공직자가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지면 그는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외교관들의 경우 ‘해외에서 편히 지내며 골프만 친다’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그것이 억울했는지 외교부 장관을 지낸 어느 외교가 원로는 회고록에서 대사 시절 주재국 장차관들과 골프를 즐기며 교섭을 성공리에 마무리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뒤 “골프도 유용한 외교 수단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정치인들 역시 골프를 은밀한 소통 창구로 널리 활용한다. 여소야대 정국이던 1989년 말 민주당 김영삼(YS) 총재와 공화당 김종필(JP) 총재의 골프 회동이 잦아졌다. 당시는 김대중(DJ) 총재의 평민당까지 3개 야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장악한 시기였다. 여당이지만 소수파인 민정당은 국회에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야당들 중 가장 의석이 많은 평민당 협조를 구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자연히 노태우 대통령과 DJ가 정국을 주도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에 소외감을 느낀 YS와 JP가 제1야당 지도자 DJ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공동 보조를 취하는 것이란 해석이 그럴 듯했다.
사실 1989년 말에는 여소야대 국면 타개를 위한 정계 개편 논의가 무르익고 있었다. 노 대통령과 민정당이 ‘야당과 합쳐 여대야소 정국을 복원한다’는 큰 그림을 그린 가운데 세 야당 중 어디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그 시절 여야 정치인들이 수시로 연 골프 모임은 곧 단행될 정계 개편의 범위 등을 의논하는 비밀 회의장이었던 셈이다. 해가 바뀌어 1990년 1월22일 청와대에 모인 노 대통령과 YS, JP는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을 발표했다. 그들은 ‘범(凡)보수 통합’의 기치를 내걸었다. 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압도적 의석수를 토대로 의원내각제 개헌을 추진키로 했다. 다만 YS가 입장을 번복하며 내각제 개헌은 없던 일이 됐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중진들의 골프 회동이 정치권의 화제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친 이들은 국회부의장 등을 지낸 다선 의원으로, 평소 개헌 필요성에 공감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마침 이 대통령은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헌법을 고쳐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 또는 4년 연임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이를 두고 국회 개헌선(재적 의원 3분의 2) 확보를 위해 이 대통령이 직접 야당을 설득하고 나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보기에 따라선 정계 개편 시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정치는 골프장에서 시작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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