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장군 김유신(595∼673)을 바라보는 두 시선은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년)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1948년)의 상반된 평가에서 기인한다. 삼국사기는 김유신을 “일통삼한(一統三韓)이란 웅지를 품은 전승무패(全勝不敗)의 전략·전술가”라고 기술한 반면, 조선상고사는 “교활한 음모로 적국을 혼란에 빠뜨린 음험하고 무서운 정치가”로 묘사하고 있다.
김유신에 대한 각각의 평가는 을지문덕, 이순신 등 역사의 맹장들과는 달리 그 수가 매우 적지만, 시·소설·영화·드라마 등에도 고스란히 투영돼 나타났다.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은 자존심이 강하지만 신중하고 지혜로워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인물로,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여유와 아량을 보이는 어진 이로 그려졌다고 봤다.
하지만 강인한 시인은 1986년 발표한 시 ‘김유신에게-아아 역사여’에서 “푸르고 기름진 대륙에의 꿈을/ 무참하게 베어버린/ 유신(庾信), 그대의 칼은/ 차라리 푸줏간에서 뻘건 말고기나/ 자르고 있을 걸”이라고 비판하는 등 문화예술계 대부분은 고구려를 최우선에 놓고 신라, 백제를 비하시키는 신채호 사관의 연장선상에 서있다고 임 교수는 분석했다.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는 19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학술대회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을 연다. 드넓은 대륙의 기상을 강탈한 신라를, 그리고 그 주역 김유신에 대해 단재 신채호가 내렸던 유배조치를 100년이 지난 지금 풀어주자는 취지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기조발표문 ‘신라 김유신의 정치적 지향-연구의 진전을 기대하며’에서 “한민족은 7세기 민족적 동류의식이 없었다”면서 “격동의 7세기 동아시아 정국 한가운데서 중심자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에 대해 과장, 허위를 걷워내고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범환 서강대 교수는 김유신이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로서 컴플렉스와 한계를 갖고 있었다는 학계의 ‘공식’을 비판하며 “김유신의 부계는 신라 당대 어떤 가문에도 뒤지지 않는 귀족이었고 모계 역시 신라 정통 왕실이었기에 김유신의 정치적 위상은 집안 배경과 개인적 자질에서 획득된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