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오른쪽)이 14일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를 도렴동 외교부 청사 접견실로 초치, 중학교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기로 한 일본 정부의 방침에 항의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일본 정부가 14일 중학교 신학습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우리 정부는 주일대사 일시귀국을 포함한 강력 대응 방침을 천명하면서 양국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이미 소고기 문제로 직격탄을 맞은 한미관계와 함께 한일관계마저 벼랑 끝으로 몰리면서 ‘한·미·일 관계 복원’을 기치로 내세워 온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은 중심이 흔들리는 양상이다.
독도 문제에 대한 이번 일본 정부의 결정은 우리 정부의 대외전략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5월18일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관련 내용을 보도한 이후 우리 정부에선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외교장관과 차관, 주일대사까지 모두 나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해설서 명기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불과 5일 전인 지난 9일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를 만나 독도의 일본 영유권 명기 검토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고 일본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촉구한 상황이었다. 후쿠다 총리는 “이 사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 신학습요령 해설서는 독도를 명기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취임 후 2차례의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던 이 대통령으로선 ‘뒤통수를 맞은 격’이나 다름없다.
독도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대일정책 노선을 전환하면서 일종의 여지를 준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책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노무현 전 정부 시절 독도 문제로 ‘외교전’이라는 용어까지 쓰며 단절되다시피 했던 한일관계에 대해 이 대통령은 아무런 일본의 입장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용서’를 언급하며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면서 “일본 우파로서는 독도 문제를 끄집어내도 노 전 대통령 시절과 같은 한일관계 악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응책에서도 ‘반드시 내용을 시정하겠다’는 의지보다는 ‘현 상황을 돌파하고 보자’는 생각이 더 많아 보인다. 2001년 최상룡 대사 이후 처음 이뤄지는 권철현 주일대사 일시귀국에 대해서도 정부는 ‘소환’이 아닌 ‘일시귀국’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돌아갈 여지를 열어놓기 위해서다. 정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귀국해서 상황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협의한 후 다시 귀임하는 것”이라며 “해설서의 시정이 안 되면 귀임을 안 한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셔틀외교 복원을 비롯한 남은 한일 간 외교일정에도 이번 문제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곤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도 문제를 안고 한일관계를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태도로 한·미·일 공조를 내세우며 한·일 협력을 강조해 온 정부 대외정책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과의 협력 강화 방침으로 한국이 얻은 게 없다”면서 “이번 독도 문제로 ‘대일 정책’은 심각한 외교적 딜레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민 기자 21s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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