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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상서 지워져가는 벼랑끝 인생들

입력 : 2008-10-17 17:50:27 수정 : 2008-10-17 17: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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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씨 첫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출간 젊은 소설가 조해진(32)의 첫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민음사)를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울하고 어두운 색채를 배경으로 ‘먹빛’이라는 단어가 유독 자주 보인다.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작가는 지금 육체적으로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사회적으로 죽어 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만 쓴다”고 평했다. 이야기를 짓고 문장을 쓰는 일이 때로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도 했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불우하다.

4년 전 독일 출장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주인공과 겨울산행에서 실종된 아버지(‘그리고 일주일’), 죽은 동생들의 원혼에 시달리는 여교사와 그 동생들(‘등 뒤에’)이 대표적이다. 절망과 고통은 다른 작품도 별반 차이가 없다.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시집온 고려인과 그녀를 떠난 남편(‘인터뷰’), 공금횡령 후 도주했다가 우연히 발견된 다른 사람의 시신 때문에 서류상 자살자로 처리된 고층빌딩 옥상 노숙자와 그보다 더 큰 어둠을 등에 진 채 생활하는 아내(‘지워진 그림자’),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린 여자와 그녀와 8년을 동거하다 숨진 남자(‘여자에게 길을 묻다’)……. 

표제작에는 32세의 한국어 강사 ‘나’와 5세 때 미국에 입양됐다가 15년 만에 한국에 온 한국어 수강생 ‘너’가 등장한다. 설명하기도 힘든 상처를 안은 두 사람은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의사소통을 못 하지만 동거를 한다. 둘은 언어로 굳이 표현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도, 거리를 거닐 때에도 한 모금의 미래마저 없어 보이는 ‘너’는 무덤덤한 시선 속에 표정은 단단히 굳어 있다. ‘나’는 학원 수강생들이 대마초를 피울 때 현장에서 동참한 이유로 경찰조사를 받는다. ‘천사들의 도시(Los Angels)’행 비행기를 포기하며 ‘나’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줬던 ‘너’와의 연락은 끊긴다. 3년 만에 찾아든 ‘너’의 편지에 ‘나’는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한다. 절절한 그리움은 고사하고 메마른 침묵뿐이다.

그러나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침묵이나 단절이 아니라 억제된 내밀한 간절함이다. ‘나’는 딱 한 번 편지지에 침묵이 아닌 글을 쓰려고 했던 적은 있다.

“너를 만나는 동안 나는 다섯 살의 너를 여러 번 보았노라고, 종종 미국 시골의 전형적인 목재 테라스에 앉아 끝없이 이어진 옥수수밭을 건너다보며 천사들의 도시를 상상했노라고, 할 수만 있다면 너를 따라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노라고, 그것만이, 그것만은 언제나 진심이었노라고.”(37쪽)

먹빛 배경과 삶의 모서리만을 살아가는 인물 때문에 먹먹해진 가슴이 겨우 숨통을 튼 경우는 다른 단편들에서도 접하게 된다. 시력을 잃어가는 연극배우와 경비원의 잘못된 증언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전과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기념사진’에는 고단한 세상에 하소연하는 작가의 희미한 바람이 녹아 있다. “남자에게 절실하게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처럼 지금 여자에게도 자신의 말을 들어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 남자는 그것만 알 뿐이다.”(170쪽)

박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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