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수백명과 직접 만나 생생히 기록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정윤미·이은진 옮김/살림/4만8000원 |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콜디스트 윈터’의 한국어판이 출간된 것은 뜻깊다. 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괴롭지만, 그것이 또 다른 전쟁을 막는 길이기 때문이다. 현재진행 중인 북핵문제, NLL문제 등도 6·25전쟁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미국·베트남전쟁에 관한 비판적 기록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미국의 6·25전쟁 경험에 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2007년 발간 직후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었다. 당시 미국·이라크전쟁의 피로감에 젖어있던 많은 미국인들은 이 책의 원서를 통해 오래전 코리아에서의 교훈을 반추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포함하여 6종 교과서 모두 ‘6·25전쟁’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이 전쟁에 대한 미국의 기억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은 1950년 겨울 미군이 경험한 가장 긴 패퇴에서 시작한다. 얼핏 보면 살얼음처럼 처리된 이 책의 띠지는 1950년 미군을 엄습했던 겨울의 찬서리를 연상시킨다. 새무얼 마셜같은 전쟁사가는 6·25전쟁을 “금세기에 일어난 소규모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쟁”이라고 기억한다. 아마도 더 추웠던 전쟁이었던 스탈린그라드공방전은 미국인들에게는 ‘먼 전쟁’이었기 때문이리라. 1944년 6월 노르망디상륙작전 이후 미군은 유럽에서도 겨울전쟁을 경험했지만, 서유럽의 겨울은 우세했던 전세(戰勢)만큼이나 따뜻했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군이 태평양 방면에서 일본군과 벌였던 전쟁은 비록 혹독했지만 따뜻한 남양에서의 전쟁이었다. 1950년 김일성과 스탈린의 남침에 맞선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그가 이미 연출했던 여러 편의 상륙드라마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해 겨울 미국민들은 따뜻했던 태평양전장의 뉴스와는 전혀 다른 충격적 기사에 직면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옹색한 미군 패잔병에 관한 뉴스였다.
왜 미군은 1950년 겨울 코리아에서 역사상 가장 긴 패퇴를 경험해야 했을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핼버스탬의 질문이다. 핼버스탬은 1962년 뉴욕타임스 사이공특파원으로 일할 당시 만났던 한 미군병사로부터 처음 코리아의 6·25전쟁에 관해 들었다. 베트남은 더웠고, 코리아는 추웠다. 프랑스풍의 사이공은 노곤했지만, 한반도 북쪽에서 조우한 중공군은 공포스러웠다. 그것은 미지의 문명권과의 충돌이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리고 있던 미군들에게 그해 한반도의 기후와 지형은 알래스카를 연상시켰다.
핼버스탬은 두 부류의 미국인들을 대비시킨다. 워싱턴과 도쿄에 앉아있던 엘리트들과 ‘가장 추웠던 겨울’을 직접 체험했던 현장의 군인들. 일찍이 ‘하바드크림슨’의 학생편집장을 지낸 후, 남부의 작은 신문사를 택해 민초들과의 부대낌을 통해 스스로의 필봉을 단련했던 핼버스탬다운 접근법이다. 마치 사회부 경험을 통해 중생한 언론인처럼 핼버스탬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백명의 등장인물들과 직접 만나 생생한 삶의 기록들을 축적했다.
저자가 시공간을 뛰어넘는 지난한 추적과정을 통해 드러낸 것은 전쟁 속의 인간이다. 정치적 계산에 여념이 없는 엘리트, 그리고 비참하게 후퇴하면서도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미군병사. 후자에 머무는 따뜻한 시선에 비해 핼버스탬이 전자에 보내는 시선은 차갑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무모한 북진을 감행했던 맥아더에 대한 평가는 ‘가장 추웠던 겨울’보다도 냉혹하다.
핼버스탬은 워싱턴이나 도쿄에 앉아 전쟁을 명했던 엘리트들이 아니라 ‘가장 추웠던 겨울’ 속에서도 묵묵히 약속을 지켰던 민초들에게서 미국의 진정한 힘과 역사, 그리고 끈질긴 희망을 읽어내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단 미국의 6·25전쟁 경험에 대해 관심을 가진 독자뿐만 아니라 전쟁과 인간, 그리고 애국의 의미에 대해 반추하고자 하는 한국어권의 독자들에게도 속깊은 선물이 될 것이다.
김명섭 연세대 정외과 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