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세확장에 매몰된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뜨겁다. 안티 기독교 운동은 차치하고라도 최근 쏟아지는 종교 관련 서적들은 개신교회들이 대규모 교회를 짓고 신자를 끌어모으느라 진정한 그리스도 공동체 정신을 잃어버린 데 대한 자성을 촉구한다. 기성 교회의 물신·성장주의에 대한 반성은 최근 교회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전도 활동을 하지 않으며 신앙적 성숙을 강조하는 대안 교회들을 자생시키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의 말미인 1987년 설립돼 교우들 사이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며 새로운 모델의 신앙공동체를 일구고 있는 ‘새길교회’(saegilchurch.or.kr)의 주일예배 현장을 지난 28일 찾았다.
◇매주 청담동의 강남청소년수련원 강당을 빌려 예배를 갖는 새길교회는 ‘교회 없는 교회’다. 이곳에서는 목회자와 신도의 구별이 없으며 교회 안과 밖의 차이도 없다. 송원영 기자 |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강남청소년수련관은 일요일이면 교회로 탈바꿈한다. 예배당 없는 ‘새길교회’의 주일예배는 매주 일요일 강남청소년수련관 강당을 빌려 이뤄진다. 새길교회는 ‘3무 교회’로 통한다. 교회(예배당) 없는 교회, 목회자 없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 교파(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교회를 일컫는다. 재산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수평적 공동체를 꿈꾸는 이곳은 현대 한국의 교회들이 잃어버린 ‘교회다움’을 되살리고 있다.
주일예배에서 목사의 ‘설교’나 ‘말씀선포’를 대신하는 ‘말씀증거’는 새길교회의 정신을 대변한다. 담임목사를 두지 않고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전 총재와 길희성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권진관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등 신학위원과 목사, 외부강사, 일반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강단에 선다. 강단과 예배자의 자리가 분리되지 않았던 예수의 광장 설교를 되살리자는 것. ‘믿으면 구원받는다’ 식의 보증수표를 던지기보다 예수의 말씀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반성하는 내용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울림이 깊다.
이날 예배인도나 대표중보기도는 여성 신도가 이끌었다. 대개 성경봉독에 머무르던 기존의 틀과 비교하면 혁명적 시도다. 기성 교단의 남성 중심주의 문화를 탈피, 여성적 경험과 목소리를 반영해왔다. 최만자 신학위원은 “기존 교회는 능력있는 여성 신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역할을 보조적인 부분에 한정시키고 가사노동의 연장선상에서 활용해왔다”면서 “새길교회에서는 설교, 예배인도, 교육 등 남성들이 주로 해왔던 영역에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목회자 없는 교회의 특성상 방문이나 상담 등을 통해 교인을 보살피는 것도 여성 신도들의 역할이다.
전체 등록 신도는 400여명.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은 200여명이다. 강남의 초대형 교회에 다니면서 교회의 정치 세력화, 세속화에 염증을 느껴 올해 가족과 함께 새길교회로 옮겼다는 임현구(50·상도동)씨는 “새길교회에서 목회자가 아닌 일반 신도가 나와 기도를 올리며, 치열한 현실 문제를 토로하는 데 감명받았다”면서 “개인적 삶의 진보적 가치를 일깨워주는 설교 내용도 굉장히 신선하다”고 했다. ‘교회 없는 교회’는 지역이 따로없다. 교우들은 인천시 강화 지역, 일산, 분당 지역 등에서 찾아온다.
■‘맹신’보다 ‘의문’ 강조하는 교회
장로나 목회자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기성 교회와 달리 새길교회는 교우들 중심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교회 살림을 꾸려나간다. 지난 1월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을 맡은 정지석 목사는 “기성 교회에서 목사들이 보여준 영적이거나 선교적 지도력 대신에 코디네이터로서의 목사 역할이 요구된다”면서 “신학 아카데미 등을 열어 신도들의 영성과 지도력을 키워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평신도 중심의 전통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했다.
예배에 이어 오후에 열린 일요신학강좌는 성경 해석과 교회 밖 실천의 문제를 고민하고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시간이다. 수평적 영성 공동체를 추구하는 새길교회는 절대 신성에 대한 ‘맹신’보다 의문과 물음을 중요시여긴다. 신학위원인 길희성 교수는 ‘새길 신앙고백에 대하여’란 주제의 이날 강연에서 “내가 예수의 대속론을 못 믿겠다고 해도 다닐 수 있는 교회는 새길교회뿐일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진 후 ‘대속론’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내놓았다. “죄 없는 누군가의 피를 보고서야 용서해주는 율법적 하느님의 면모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하느님과는 배치되기 때문에 ‘대속론’을 믿기 어렵다”는 것. 강좌에서는 ‘대속’ 을 ‘대고’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의로운 자가 의롭지 않은 자를 대신해 고통받는다는 ‘대고’로 받아들이면 예수의 죽음은 역사적 사건이 아닌 모든 의로운 자들이 받는 숭고한 상징이 된다”면서 “의로운 자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만나지 않고는 진정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강연 후 신도들의 질문이 잇따르면서 학술 세미나를 방불케하는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특히 새길교회의 실천적인 측면을 지적하는 어느 신도의 질문에 길 위원은 ‘뼈아픈 지적’이라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랑을 베풂에 있어서 개인이 아닌 제도적 사랑이야말로 받는 사람을 비굴하게 하지 않고 주는 사람을 교만에 빠뜨리지 않는다”면서 “새길교회는 헌금의 절반 이상을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지만 고난위원회 설립 등을 통해 적극적인 실천을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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