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두려움 줄여 줘야 벤처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미래 산업의 꽃을 피운다는 말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더욱이 요즘처럼 실업률이 높은 시대에는 고용창출의 역할도 중요하다. 대기업은 설비의 자동화로 사람을 많이 뽑지 않는다. 그러나 벤처기업은 소규모이기에 자동화돼 있지 않아 사람을 많이 채용하게 된다.
이러한 장점에도 요즘 벤처기업 붐이 일어나지 않아 안타깝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벤처를 시도하려는 사람이 적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안전한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경향이 많고, 창업해 내 기업을 가져보려는 사람이 줄고 있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찾는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벤처기업이 활발한 곳에서는 한두 번 실패는 대단한 일로 치지 않는다. 실패해봤기에 이제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실패는 치명적인 일이 된다. 그러니 벤처기업에 도전하는 일이 너무 위험한 일이다.
무엇이 그렇게 실패한 벤처 창업자를 치명적으로 만드는가. 회사가 부도 나면 신용불량자로 찍힌다는 사실이다. 원칙적으로 주식회사와 대표이사 개인은 별도다. 따라서 회사 경영에 실패해도 가계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왜 회사의 실패가 대표이사의 가정으로 연결되는가. 금융권에서 회사에 자금을 융자해줄 때 대표이사의 보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일을 왜 개인이 보증해야 하는가 궁금하다. 금융권은 대상 회사를 믿을 수 없기에 임직원이 보증하라고 요구한다. 엉터리 벤처기업도 있기에 금융권의 태도에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벤처기업은 융자받지 않고 투자를 받으면 이런 보증 문제도 없고 좋을 텐데 왜 융자를 받는 것일까. 금융권이 융자하면 원금과 이자를 받는다. 그러나 투자하면 회사의 주식을 받게 되고 나중에 주식값이 오르면 차액으로 이익을 보게 된다. 투자는 상환 의무가 없어 기업의 대표는 보증을 설 필요도 없어진다.
투자한 회사가 잘 돼 주식이 오르면 몇 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금융권이 그런 것을 마다하고 융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게 돼 있는 창업투자회사도 융자하는 일이 많다.
한마디로 대상 회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망을 자신하면 당연히 투자해 고수익을 노릴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없어 안전한 저수익을 택하는 것이다. 이유는 창투사들이 좋은 회사를 구별해 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결국 왜 창투사는 우량 벤처기업을 골라내지 못할까 하는 질문에 다다른다. 벤처기업을 평가하려면 우선 회사의 기술 등 지식재산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기술이 적용될 미래의 시장을 알아야 하고, 회사 임원들의 됨됨이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을 가진 창투사는 장래성 있는 벤처기업을 찾아내 투자할 것이고 그럴 자신이 없는 곳은 겁이 나서 융자를 주로 한다. 즉 창투사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투자를 많이 하면 벤처 창업자가 보증을 설 이유도 없고, 혹시 회사가 잘못돼 부도가 나더라도 신용불량자가 될 이유도 없어진다.
다시 벤처 정신에 불을 지피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투사의 벤처기업 평가 능력이 향상돼야 한다. 평가 능력이 없으면 안전하게 융자해주고 대표이사 개인 보증을 요구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옥석을 구분할 수 있으면 우량 회사가 성장해 투자가 선순환된다. 또한 초기에 구별해 낼 수 있으면 전망이 없는 회사는 미리 도태돼 큰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KAIST 바이오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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