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은퇴 앞두고 밝힌 소회
미국 의회에서 1966년부터 45년 동안 한반도 문제를 연구해온 래리 닉시 의회조사국(CRS) 선임연구원이 오는 2월 2일자로 은퇴한다. 올해 70세가 된 닉시 연구원은 거의 반세기 동안 남북한 관계, 한미 관계, 동북아 정세 변화 등을 연구, 분석하고 그 결과를 의회에 보고해온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다. 닉시 박사는 퇴직을 앞둔 14일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 의회에서 바라본 한반도의 현주소에 대한 자신의 진단과 그동안의 소회 등을 털어놓았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 때문에 6자회담이 재개돼도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제한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미국, 일본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억제력을 대폭 강화하면서 북핵 문제보다는 북한의 개혁을 유도하는 쪽으로 일대 정책 전환을 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로 미 의회의 한반도 문제 처리에 깊이 관여해온 닉시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공직 생활을 정리하면서 이 같은 결론을 제시했다.
◇미국 의회조사국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하원에서 북핵문제 등 한반도 현안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북한은 이를 위해 핵탄두를 장거리 미사일에 장착하는 기술과 미국의 하와이, 알래스카 또는 서부 지역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 개발이라는 두 가지 목표 달성에 매달릴 것이라고 닉시 박사는 분석했다.
북한은 이것이 이뤄지면 미국에 직접적으로 군사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어 강성대국 실현과 대미 지렛대 확보가 동시에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닉시 박사는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군사적인 강성대국을 실현한 뒤 본격적인 경제 개발에 나서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미국, 일본은 북한의 전략적인 목표에 대응해 북한에 대한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대북 억제력을 높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닉시 박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대북 억제력 제고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이 북한의 경제 개혁 필요성을 제기했었다”면서 “한국, 미국, 일본은 지금부터라도 덩샤오핑이 추구했던 북한의 근본적인 경제 개혁을 유도함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닉시 박사는 북한이 최근 제안한 평화협정 체결 문제에 대해서도 한미 양국이 긴밀하게 협의해 공동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닉시 박사는 “한미 양국은 남북 관계 정상화가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이라는 입장을 북한 측에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한국의 경제 지원을 수용하고, 한국과 일정 수준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남북한 인적 교류, 여행 자유화 등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비무장지대 인근에 집중 배치해 놓고 있는 대공포의 후방 철수, 단거리 미사일 위협 제거 등 군사적인 신뢰회복 조치를 하는 것도 남북관계 정상화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했다.
닉시 박사는 버틀러대를 졸업한 뒤 1963년 상무부에 들어가 동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상무부에서 3년가량 근무한 뒤 1966년 현재의 의회조사국 전신인 입법지원국(RRS)으로 자리를 옮겨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5년 동안 의회조사국 동아시아 지역 담당 전문 연구원 자리를 지켰다.
닉시 박사는 “CRS는 기본적으로 미 의회에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분석·전망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CRS 연구원은 북한 핵 문제 등 특정 사안에 관해 지속적으로 보고서를 낼 뿐 아니라 상·하 의원 및 보좌관들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정 사안에 관한 의회 차원의 청문회가 열리면 의원들에게 브리핑 자료를 작성해 전달하고, 의원들의 질의서도 작성해 주며 증인 선정작업 등에도 개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닉시 박사는 “특정 국가를 방문하는 의원들에게 해당 국가와 관련된 외교 사안에 관해 브리핑도한다”고 덧붙였다.
닉시 박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의회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에는 1968년 발생한 미 해군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된 사건과 그해 발생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기도 사건이 미국 의원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1970년대에는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박정희 전 대통령 정부의 인권 탄압,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수 추진, 박동선씨가 개입된 코리아게이트가 가장 큰 이슈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닉시 박사는 “1980년대에는 광주민주화 운동과 한국의 인권 상황이 핵심 이슈였고,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20여년 동안에는 북한 핵 문제가 의회의 최대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닉시 박사는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를 다뤄 오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일로 카터 전 대통령이 추진한 주한미군 철수를 막는 데 기여한 것을 꼽았다.
그는 “당시의 한반도 안보 정세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주한미군 지상군을 철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라고 판단했다”면서 “당시 의원들에게 주한미군 철수 불가 사유를 상세히 분석한 보고서를 여러 차례 전달했고, 의원들이 결국 카터 정부의 계획을 무산시켰다”고 말했다.
닉시 박사는 “카터 정부 당시에는 주한미군 지상군 철수에 반대했으나 지금은 주한미군 지상군을 모두 철수시켜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닉시 박사는 “20년 전과 비교할 때 북한의 남한에 대한 재래식 전력을 이용한 위협은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닉시 박사는 “주한미군은 공군력과 해군력 중심으로 운영돼야 하고, 지상군의 전투 능력은 한국군이 충분히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미군 지상군 병력이 한국에 주둔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닉시 박사는 2002년 3월25일자 보고서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가 현대를 통해 북한 당국에 돈을 준 ‘대북 송금 의혹’을 처음으로 폭로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현대가 금강산 관광 대가로 지급한 4억달러 외에 4억달러를 웃돈으로 북한에 줬고, 이 돈이 군사비로 전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닉시 박사는 “대북 송금 의혹을 제기하자 한국 정부 관리들이 찾아와 내게 거세게 항의했다”고 전했다.
닉시 박사는 “한국 측은 대북 송금 의혹 제기로 한국에 엄청난 망신을 주었다고 격분했지만 나로서는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의 의회가 진상을 소상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으며, 지금도 내가 한 일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닉시 박사는 CRS에서 은퇴한 뒤에도 워싱턴 DC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을 맡아 한반도 문제를 계속 연구한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닉시 박사 약력>
●미 버틀러대 졸
●조지타운대 국제정치학 석사 및 박사
●PRS 그룹 동아시아 담당 선임 고문
●로이드, 토머스 앤드 볼사 고문
●미 상무부 동아시아 담당관
●미 의회조사국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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