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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잇는 사람들] <14> 무형문화재 궁장 권무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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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17 18:27:04 수정 : 2010-02-17 18: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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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代째 가업 이어가며 활에 ‘민족의 혼’ 불어넣다
“미국에 가서 서양의 활들과 겨루어 보았는데 활 크기는 2m가 넘어도 겨우 100m 정도밖에 날아가지 못했습니다. 우리 각궁은 크기는 작지만 보통 사람이 쏘아도 250m는 너끈히 날려보냅니다. 우리 활은 우리 민족의 혼입니다.”

◇권무석 궁장이 물소 뿔을 재료로 우리의 전통 활인 각궁을 만들고 있다. 습도가 높으면 풀이 붙지 않아서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년에 4개월만 작업할 수 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23호 궁장 권무석(67)씨는 조선 숙종대 이래 경북 예천에서 12대째 활을 만들어온 집안의 장인이다. 권씨는 그 명맥이 끊어질 듯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는 국궁 제작자이자 활쏘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활 지킴이다. 사실 ‘국궁’이란 표현은 양궁이 유입되면서 편의상 구분하기 위해 쓴 표현일 뿐 그냥 우리 활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그는 ‘궁도’라는 표현도 일제의 영향을 받은 표현이라고 못마땅해했다.

권씨는 12살 때부터 활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해 21살 때 군에 가기 전까지 형 권영호의 공방에서 1년에 50개 정도를 제작했다. 군 입대 후에는 월남에도 다녀왔고, 제대 후에는 체신공무원과 버스운전기사를 거치며 활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1970년대 후반 추석 때 그의 형이 “내 대에서 이제 활은 끝나는가 보다”라고 탄식하던 소리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결국 자신이 형의 뒤를 잇게 되었다. 제작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재료 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수지타산마저 맞지 않으니 활 만들기를 생업으로 삼는 자녀들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물소 뿔을 재료로 사용하는 전통 활 각궁(角弓)을 만든다. 물소 뿔은 물론 소 힘줄, 대나무, 뽕나무, 화피(벚나무 껍질), 민어부레풀 등 7가지 재료가 사용된다. 실제 작업 기간은 최소 2개월 정도 걸리지만 재료 준비와 가공 시간까지 합치면 1년 넘게 소요된다.

권 궁장은 “활 하나 만들려면 손이 1000번 이상 가야 한다”면서 “30년 넘게 이 일을 해왔지만 1년에 100개 이상 만들어본 적 없고 평균 50∼70개 정도 완성하는데 이 중 20% 정도는 파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활 제작에만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육군사관학교와 경찰대학을 찾아가 활쏘기 강좌를 유도해 냈다. 고종 때 경희궁에 만든 활터 황학정에서는 활쏘기 사범으로도 복무했다.

◇권무석 궁장이 서울 재동 무형문화재 교육전시장에서 전통활쏘기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요새는 전국 어디를 가나 그냥 쏘아서 맞히는 것만 가르치는데 옛 어른들이 가르친 대로 호흡까지 따라 하면 위장병이나 관절염도 완화시킬 수 있는 웰빙스포츠가 바로 전통 활쏘기입니다. 지금도 활터에 가면 90살 넘은 분들도 나오는데 그분들 건강은 바로 전통 활쏘기 덕분입니다.”

그가 ‘웰빙스포츠’라는 표현을 쓰는 배경에는 해외에 ‘활쏘기 전도사’로 나아가 애를 쓴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외국 대사들에게 우리 활쏘기를 가르치다가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미국에 건너가 활쏘기 시연을 벌이면서 현지인들을 매혹시켰다. 연변에는 사비만 2000만원이나 들여 활과 화살을 지원했고 현지에 궁도협회까지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안타깝게도 활쏘기가 ‘스포츠’라 하여 문화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미국행이 좌절됐지만 그는 활쏘기를 우리의 ‘브랜드’로 세계에 각인시키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권무석 궁장이 각궁의 탄력을 가늠하고 있다. 국궁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뒤로 휘어질 수 있는 활이다.
권 궁장은 활 만들기와 쏘기에 매진해온 세월에서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는 마지막 질문에 “민족혼을 찾았다는 것”라고 단언하면서 “춤이나 택견에서, 그리고 천 번 이상 외침을 받고도 휘어졌다 다시 일어난 역사에서 보듯, 세계에서 가장 뒤로 많이 휘어지는 우리 활처럼 우리 민족혼은 부드럽다”고 맺었다.

글 조용호 선임기자, 사진 이제원 기자 jw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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