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덩어리·눈사태 등에 갈비뼈 부러지고 탈진 거듭
작년 10월 안나푸르나 첫 도전 강풍으로 눈물머금고 하산 ‘철의 여인’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27일 안나푸르나를 오르며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1997년 7월 가셔브룸Ⅱ를 오른 것으로 시작으로 세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 도전에 나선지 13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오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완등 대기록은 한마디로 인간의 한계에 절망하며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사선 넘나든 철녀(鐵女)=오 대장은 히말라야에 오르면서 수차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운 좋게 살아 돌아왔다. 2006년 시샤팡마 등정 길에 굴러온 얼음 덩어리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눈사태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앞서 2004년에는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밟고 내려오는 길에 탈진해 쓰러졌다가 다른 원정대에 발견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오 대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잠이 드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산에서 죽기는 싫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에베레스트 원정에서는 또 동료 산악인인 박무택이 로프에 매달려 숨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독한 X’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해 7월 오 대장의 14좌 완등 경쟁자이자 좋아하는 후배였던 고미영 대장이 낭가파르바트에서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도 큰 충격이었다. 오 대장은 고 대장이 숨지기 불과 몇 시간 전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밟고 내려오면서 만났다. 주위에서는 두 여성 산악인이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라는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다 고 대장이 숨졌다며 비난의 화살을 오 대장에게 돌리기도 했다.
“해냈다” 드디어 해냈다. 안나푸르나 원정대원과 방송센터 관계자들이 27일 베이스 캠프에서 오은선 대장이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으면서 세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 완등에 성공하자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안나푸르나=연합뉴스 |
눈과 안개로 1m 앞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현상과 초속 35∼40m의 강풍 때문에 정상을 눈앞에 두고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만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귀국한 그를 기다린 것은 앞서 그해 5월 오 대장이 정말 캉첸중가 꼭대기를 밟았느냐는 논란이었다. 일부 국내 산악인들은 오 대장이 캉첸중가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정상임을 확인하기에 불충분하고 등정 소요시간도 너무 짧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오 대장은 함께 등정한 셰르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악천후로 시야가 매우 좋지 않았다. 함께 등정한 셰르파 3명이 정상이라고 말해 줬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 17일 안나푸르나에 오르면서 오 대장과 같은 13좌를 정복한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과 일부 외신은 지난해 국내에서 문제가 됐던 캉첸중가 등정 논란을 다시 끄집어내며 흠집을 내려고 했다. 파사반에게 쫓기는 상황이 된 오 대장은 지난 25일 안나푸르나 정상에 도전하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강한 바람과 눈보라 때문에 다시 물러나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하지만 오 대장은 포기하지 않고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으면서 세계 여성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로 이름을 올렸다.
문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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