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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역사] <2>부활하는 영국 ‘메리로즈號’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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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12 00:52:54 수정 : 2010-05-12 00: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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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대국 이끌던 메리로즈號 1545년 프랑스 함대에 침몰
각계 협력 400년 만에‘햇빛’유물 등 활용 제2 가치 창조
서유럽이 근대사를 주도한 원동력 중 하나는 진취적이고 탐구적인 르네상스 정신이었다. 이러한 탐구 정신은 서양에서 동양에 이르는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 발견 같은 세계사적 공간의 확대로 나타났다. 나침반과 해도 제작에 따른 항해술, 군선 제조 기술에서 앞선 영국은 신대륙에서 부를 창출하고 국가 간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현재 영국에는 영국해양박물관, 메리로즈호박물관, 콘월해양박물관 등 여러 개의 해양박물관이 있다. 대항해시대를 이끈 국가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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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렌트 전투를 묘사한 그림. 그림 가운데에 있는 성벽 앞바다를 보면 가라앉고 있는 메리로즈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정확한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프랑스 함대와 전투 중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영국 튜더왕조의 헨리 8세(1509∼1547)는 막강한 해군력과 강력한 왕권으로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닦았고, 밖으로는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해 대서양을 지배했다.

헨리 8세는 튜더왕정의 해군력과 르네상스 과학의 종합산물로써 전투함 메리로즈호(The Mary Rose·1510∼1545)를 건조했다. 여동생의 이름(Marry)과 튜더왕조의 문장(紋章)이었던 장미(Rose)를 더해 ‘메리로즈’라고 이름 붙인 군함은 헨리 8세의 총애를 듬뿍 받았다. 메리로즈호는 30여년 동안 각종 해전에서 크게 활약하다가 1545년 프랑스 함대와의 전투 중 솔렌트(Solent) 해협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침몰한 지 400년이나 흘러 메리로즈호가 새삼 주목받기 시작한 건 바로 당시 전쟁 현장에 대한 생생한 기록 때문이다. 궁정에 배속된 화가들이 전투 장면을 그림과 기록으로 남긴 것. 영국 해양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풍부한 해양화(海洋畵)로 현재 영국해양박물관에는 수많은 해양 그림이 소장돼 있다.
◇2012년 새로 단장할 메리로즈호 전시 모습. 발굴 상태 그대로 복원한 메리로즈호 맞은편에 거울을 설치해 선체 내부도 살펴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선체 안의 대포, 생활 도구들도 원래대로 배치하여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1965년 언론인 알렉산더 맥키(Alexander Mckee)는 메리로즈호를 발굴하기로 마음먹었다. 전해져오는 문헌기록을 참고해 ‘솔렌트의 배’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수중탐지기(소나)를 도입해 1967년 해저에서 이상 물체를 발견하면서 메리로즈 수중발굴위원회가 창설됐다.

1968년부터 워터젯과 공기펌프를 이용해 발굴을 시작했으며, 자원봉사자들이 팀을 꾸려 물체 주변에 대한 다이빙 조사를 실시했다. 수중발굴위원회는 1971년 5월5일 매리로즈호의 좌현 뼈대를 발굴하면서 수중발굴조사가 본 궤도에 들어섰다. 메리로즈호 발굴조사에는 고고학자·역사학자·박물관학자·조선 기사 등 500여명이 참가했고, 충분한 논의와 연구 끝에 1982년 10월11일 포츠머스(Portsmouth) 항구로 인양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정부는 인양한 메리로즈호와 다양한 유물을 보존하고 기념하기 위해 포츠머스 역사조선소(Portsmouth Historic Dockyard) 안에 메리로즈호박물관을 건립했다. 물론 복원된 메리로즈호가 가장 중요한 전시물이다.

진호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메리로즈호 안에는 주사위·가마솥 등 선원들의 일상용품과 각종 항해도구·총기류·의복·의료기기·음식물·악기·식기류 등 16세기 튜더왕조 시대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또한 인골과 동물뼈, 밧줄, 옷, 식물류를 비롯한 유기물도 포함돼 있었다. 400여년의 긴 세월 동안에도 깊은 바다 속에 잠겨 있던 유물들은 놀라울 정도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었다.

메리로즈호박물관은 총 9만점에 이르는 모든 출토 유물 중 밧줄, 옷, 동식물 유해, 씨앗을 비롯한 유기물 2만2000점 이상 보존 처리했다. 특히 유물의 보존처리를 위해 습도와 온도가 낮은 별도의 처리시설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메리로즈호에서 출토된 사람 뼈와 유기물들은 인간의 건강·위생·의술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배 안의 항해도구와 선상 생활용품들은 16세기 생활사의 단면을 밝힐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육중한 청동제 대포, 철제 대포, 대포 운반차, 포탄, 총기류는 16세기 무기발달 현황을 알 수 있게 했다.

한 언론인의 놀라운 의지로 시작된 메리로즈호 수중발굴조사는 자원봉사자의 참여,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인양 유물 관리를 위한 박물관 건립 과정으로 이어졌다. 수중문화재 보호를 위해 정부만이 아니라 사회 각계의 활발한 참여가 이루어질 때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를 메리로즈호 발굴과 박물관 건립이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메리로즈호박물관이 제공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은 유물의 활용과 다양한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제2의 가치를 창조해 나간다는 점이다.

출토 유물을 보존·처리 하는 과정에서는 대학과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개설, 보존 과학자들을 양성해나가고 있다. 초중고교생에게는 각 단계별로 교과목 연계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생들이 어릴 적부터 과학에 흥미를 갖게 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물관은 사회교육으로 출토 유물을 소재로 한 16세기 영국 튜더왕조시대의 역할극 등 프로그램을 개발,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들이나 시골 어린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물관을 방문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출토된 항해도구, 무기, 의료도구, 옷, 신발, 음식 등을 체험토록 해 16세기 영국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하게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고객을 위해서는 홈페이지에 게임 등 흥밋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이렇게 운영하는 박물관 사회교육으로 연간 4만명 이상의 고객이 혜택을 보고 있다.

이외에도 메리로즈호는 TV 다큐멘터리·퀴즈쇼·오락프로그램·만화·영화·오페라·소설·상품 브랜드 등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총 522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메리로즈호박물관을 견학해 이들이 소비하여 창출한 금액만 3700억원 이상이다. 16세기 르네상스의 과학으로 탄생한 메리로즈호가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진호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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