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앙코르와트서 세계 첫 패션쇼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곤욕 치르기도
평생 독신… 아들 입양해 쌍둥이 손자 얻어 12일 별세한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한국 패션계의 ‘얼굴’이자 대한민국 누구나 다 아는 친숙한 ‘앙 선생님’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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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은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현장에서 왕성할 활동을 해왔다. 앙드레 김이 2008년 한 패션쇼에서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
부산 한영고등학교를 졸업한 앙드레 김은 서울로 올라와 디자이너 최경자의 양장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1961년 최경자가 국제복장학원을 설립하자 1기생으로 입학해 본격적인 디자이너 수업을 받았다. 국제복장학원 수료 후 그는 1962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패션쇼를 열고 화려하게 데뷔했고, 같은 해 소공동에 ‘살롱 드 앙드레’라는 이름의 작은 의상실을 열었다. 의상실에 붙인 ‘앙드레’라는 이름은 당시 프랑스대사관의 한 외교관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려면 부르기 쉬운 외국 이름이 있어야 한다며 붙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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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이 1999년 8년 국회 법사위 ‘옷로비 의혹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출석, 증언을 하고 있다. 당시 그의 본명(김봉남)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앙드레 김은 1982년 이탈리아 정부 문화공로훈장, 2000년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패션디자인부문으로 제7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1999년 그의 패션쇼가 열렸던 11월6일을 ‘앙드레 김의 날’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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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 서울 반도호텔에서 열린 한 웨딩패션쇼에 앙드레 김이 정장을 입고 출연한 모습이 이채롭다. |
뛰어난 디자인 능력뿐 아니라 앙드레 김은 독특한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촌스런 본명(김봉남)과 영어를 섞어 쓰는 특이한 말투, 흰옷을 고집하는 독특한 패션 스타일과 머리카락을 까맣게 염색하고 이마 윗부분까지 까맣게 칠한 헤어스타일, 진한 메이크업 등은 앙드레 김의 ‘상징’이다.
1999년 불거진 ‘옷 로비’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말년에는 의상 외에도 보석·속옷·안경·가구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 역량을 펼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1982년 당시 18개월이던 아들 중도씨를 입양했으며 2005년 쌍둥이 손자를 얻어 할아버지가 됐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 장지는 천안 공원묘원.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앙드레 김 연보 | |
1935 | 경기도 고양 출생 |
1962 | 반도호텔에서 패션쇼를 열고 데뷔 |
1966 |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패션쇼 |
1982 | 이탈리아 문화공로훈장 |
1988 | 서울올림픽 개최기념 패션쇼 |
1997 | 화관문화훈장 |
2000 | 프랑스 정부 예술 문학훈장 |
2003 | 유니세프 친선대사 |
2005 | 한국 복식학회 최고 디자이너상 |
2006 |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패션쇼 |
2007 | 자랑스런한국인 대상 |
2008 | 보관문화훈장 |
2010. 7 |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 |
2010. 8. 12 |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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