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박 노리는 해적들에 ‘본때’
‘국익·국격 동시 제고’ 큰 성과
해적과의 협상 불가 입장을 고수하던 정부가 군사작전이란 강경대응을 통해 해적을 제압했다. 그동안 한국 상선은 해적들 사이에서 ‘봉’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4월 납치돼 217일 만에 풀려난 삼호드림호 사건의 경우 선사인 삼호해운이 인질 몸값으로 950만달러(약 105억원)라는 사상 최고액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적들이 같은 회사의 삼호주얼리호를 노린 것도 삼호드림호 학습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칼을 빼든 것이다.
◇격전의 흔적들 청해부대 특수전요원들이 21일 수백개의 총탄자국이 선명한 삼호주얼리호로 진입하고 있다. 이 총탄 자국들은 함포 위협사격에 이어 해적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링스헬기에서 발사한 K-6 기관총 흔적인 것으로 보인다. 해군 제공 |
해군 청해부대는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지 6일 만인 21일 새벽(현지시간) 최영함(4500t급)에 승선한 22명의 특수전요원(UDT)들을 투입해 선원 구출작전에 나섰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구출작전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합참 관계자는 “(작전 개시는) 이번 주말을 넘기지 않으려 했다”고 털어놨다.
구출작전을 벌인 지점은 소말리아에서 1314㎞ 떨어진 공해상이다.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쪽으로 더 가까이 이동할 경우 해적 세력이 늘어나 상황이 더 불리해질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2006년 동원수산 소속 참치 원양어선 동원호가 납치된 이후 한국 상선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사례는 모두 8건. 그 가운데 삼호드림호 사건은 최악이었다. 지난해 4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미국 루이지애나주로 향하던 삼호드림호는 인도양에서 납치됐다. 당시 청해부대 소속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이 피랍 현장으로 급파돼 하루 만에 삼호드림호를 근접 추격했지만 언론 보도 이후 해적들이 삼호드림호 선원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군사작전을 접어야 했다. 해적들은 삼호드림호를 몰고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갔고, 충무공 이순신함은 먼 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상황은 초동 단계에서 해적을 제압하는 게 최선의 방책임을 알려줬고, 공해상에서의 삼호주얼리호의 구출작전으로 이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최영함은 작전 개시 전날까지 피랍 선박을 따라 기동하며 위협 사격과 투항 권유 방송으로 해적들을 당황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 관계자는 “우리가 현지어 등으로 계속 투항을 권고하자 해적들이 겁을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위협사격을 하고 심리전을 펼친 것은 해적들을 지치게 만들려는 의도였는데 그게 적중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는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도 군사작전 감행의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작전 브리핑 21일 청해부대 특수전요원들의 전격적인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작전이 성공적으로 종료된 뒤 이성호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이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작전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
소말리아 해적이 창궐하자 국제사회가 나섰다. 2005년부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태국에 이르기까지 수십대의 구축함을 아덴만 해역에 파견해 놓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2008년 6월 결의 1816호를 통해 소말리아 해역에서의 해적 퇴치를 위한 무력 사용을 허용했다. 하지만 아덴만 해역에 연합전력이 배치된 이래 군사작전으로 피랍 상선을 구출한 사례는 다섯 번뿐일 정도로 인질 구출작전에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이 때문에 구출작전을 펼친 국가들도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 등 대부분 군사강국들이다.
이번에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청해부대가 완벽하게 구출해 냄에 따라 소말리아 해적들에 미칠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합참 관계자는 “앞으로 해적들은 우리 상선을 납치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요 무역 통로인 아덴만 해상교통로를 왕래하는 우리 선박의 안전성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번 구출작전은 국격과 국익을 동시에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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