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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기 이야기](15) 천자총통에서 K9 자주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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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8-31 04:12:46 수정 : 2011-08-31 04: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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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주도 ‘번개사업’ 통해 73년 곡사포 국산화

M3에 이어 도입된 야포는 105㎜ 곡사포의 명품 M2였다.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6일 13문을 처음으로 미군에게서 인수했고, 그해 9월 무렵 육군의 주력 야포가 됐다. 당시 군에 도입된 모델은 M2의 일부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M2A1이었다. M2A1은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이 곡사포를 포함한 각종 무기체계의 제식 명칭을 일제히 변경하면서 M101로 이름이 바뀌었다.

M101은 포가의 형태에 따라 M101 원형과 M101A1로 갈라진다. 현대 화포 구조는 포신부(咆身部)·주퇴복좌(駐退腹座) 장치 및 포가부(砲架部)로 나뉘어진다. M2부터 M101A1까지의 105㎜ 곡사포는 거의 동일한 화포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한국은 보유 중이던 M2A1 곡사포가 노후해 신형 화포가 필요했다. 6·25 때 사용한 M2A1 곡사포로는 북한에 맞설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컸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군에 신형 M101 곡사포를 건네는 데 주저했다.

국내 생산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 주도의 ‘번개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제대로 된 도면 하나 없이 역설계를 통한 M101 모방 개발이 진행됐고, 마침내 1973년 3월 대한중기 구로동 공장에서 시제품이 완성됐다. 그해 6월25일에 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06㎜ 무반동총, 4.2인치 박격포, 105㎜ 곡사포 등 국산무기 시제품 시사회가 열렸다. 정밀가공기술 기반이 전무했던 당시에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성공적으로 시범 사격을 마친 뒤 그해 12월 백령도에 처음으로 배치됐다.

곡사포 개발에 냉담했던 미국은 한국이 105㎜ 곡사포 개발에 성공하자 태도를 바꿨다. M101 곡사포 설계도 제공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해외 수출 시 미국과 협의할 것’이란 단서조항을 달았다.

이후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M101 곡사포를 포함한 각종 병기의 도면 등 기술자료를 입수해 기반시설을 갖춘 뒤 1977년부터 KM101A1을 생산했다. 이 포는 지금도 일반 보병사단의 주력 화포로 사용되고 있다. M101A1은 현재 58개국에서 운용 중이며, 한국은 탄약 및 문수에서 세계 최대의 양을 보유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KM101A1 등 105㎜포는 아직 전국 군부대에 2000여 문 이상이 남아 있고, 포탄도 100만발 이상이 저장돼 있다”고 말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KM101의 국내 생산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신형 105㎜ 곡사포 개발에 나섰다. 바로 KH-178 견인포다. K는 ‘코리아’, H는 ‘곡사포(Howitzer)’, 1은 최초, 78은 개발시작 연도를 각각 뜻한다. 이 곡사포는 사거리가 14.7㎞로, M2·M101 계열의 11.2㎞보다 더 길다.

해외 수출을 고려해 1985년에 1개 대대가 전력화됐지만 수출상담이 없었고, 155㎜ 중구경 화포인 KH-179가 개발되자 포신이 길어 경포로서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2000년에 구형 105㎜로 교체됐다. 현재 비축물자로 보관 중인데 ‘비운의 화포’라 할 수 있다.

박병진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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