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아이들이 보면 마치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번 미소 짓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일종의 나의 고집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라는 단어는 신의 영역이다. 너무 거창하다. 현대인들은 신이 하는 것처럼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일컬어 creative라는 단어를 쓴다. 그러나 기존에 있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다시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창조이다. 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원효의 아들 설총이 한 절에 찾아갔다. 한 스님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설총이 물었다. “들어가도 됩니까? 저희 아버지를 찾으러 왔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자신이 안에 들어가서 찾아볼 테니 그동안 마당을 쓸고 있으라고 했다. 잠시 후 마당을 깨끗이 치운 설총에게 스님은 말했다. “마당을 잘 쓸었다. 그러나 가을 마당은 가랑잎이 몇 장 떨어져 있어야 제 맛 아니겠는가?” 그 스님이 바로 원효였다. 이처럼 마당에 떨어진 가랑잎 몇 장을 보고 사람들이 가을을 느낄 수 있고, 그러한 보편성을 지속시킬 수 있게 되면 그게 바로 작품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좀더 드러내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그것이 보편성이자 작품이 된다. 이런 것 또한 기존에 존재하던 것의 ‘재제시(Re-presentation)’라고 할 수 있다.”
―‘여백’의 예술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백’은 예술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동양화에서는 그려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 부분이 오랫동안 ‘여백’으로 해석됐다. 나는 그 의미가 아니다. 그림으로 인해 그려지지 않는 부분과 그려지는 부분이 서로 팽팽한 긴장감을 지니고 울림을 형성할 때 그것을 여백이라고 하고 싶다. 종이 울릴 때도 공간과 시간 등 여러 조건이 갖추어져야 바이브레이션을 일으켜 소리를 낸다. 그 울림이 ‘여백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종 자체, 치는 사람, 그 공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우러져 소리를 내는 ‘여백현상’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점점 극한으로 몰고 가서 궁극적으로 점 1개와 캔버스 사이의 여백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나의 욕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 자신에게 ‘회화, 그리다’란 어떤 의미인가.
“물감이 주는 물질성, 내 생각의 위계, 정신성, 거기에 캔버스는 캔버스대로, 붓은 붓대로, 물감은 물감대로 또 나의 호흡은 호흡대로 모든 것들이 제각기 역할을 해주어야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물감이 자기 주장을 몽땅 드러낸다거나 작가의 생각이 지나치게 드러나면 안 된다. 서로 어울려서 서로에게 약간의 상처를 입히며 뒤섞여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의 경우 하나의 운동 또는 체조와 같다. 매일 호흡도 가다듬고 많은 생각도 정리한다. 신체와 정신을 맑게 하여 절대성을 지닌 하나의 힘이 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나의 그림의 존재 이유이다.”
―작업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솔직히 너무 힘들다. 내 작업은 오랫동안 훈련되어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엇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다. 내 작업은 힘이 있어야 하고 에너지가 많이 있어야 바이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 아침 8∼9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저녁 4∼5시까지 점 하나 찍곤 한다. 한 작업을 완성하는 데 40∼50일이 걸릴 때도 있다. 이 작업을 11년 동안 했다. 간단하게 보일 수도 있고 마치 사기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훈련을 했는데도 작업은 너무 힘들다. 작업량을 줄이고 있다. 예전에는 1년에 20∼30점 했는데 현재는 10여점 한다.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호흡을 먹고 숨을 내쉬면서 그려야 한다. 대단히 힘이 있어야 한다.”
―구겐하임은 ‘이우환 작가는 모더니즘에 기반한 후기 미니멀리스트’라고 평했다. 미니멀리즘을 비판한 작가의 기존 주장과 배치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사실 근대 미술을 비판하는 입장을 가져왔고 근대 미술의 마지막 자락이 미니멀리즘이다. 나의 작품을 보고 90% 이상이 미니멀리즘이라고 평가한다. 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극한으로 몰고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가 되게 한다는 것이 일종의 미니멀리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분명히 다르다. 미니멀리즘은 ‘just it is’ 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나의 작업은 ‘그것 외의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바로 그것이 아닌 그 밖의 것(그 너머의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업을 한다. 내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백번 말해도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02)2287-3500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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