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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야쿠자, 폭력단 배제 조례에 무릎을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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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3-26 10:47:34 수정 : 2012-03-26 10: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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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밤세상을 지배했던 ‘야쿠자(조직폭력단)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 전역에서 지난해 10월부터 ‘폭력단배제 조례(이하 폭배조)’가 도입되면서다. 이 조례는 기업과 음식점, 술집 등이 야쿠자와 관계를 일절 맺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야쿠자가 발붙일 만한 환경을 없앰으로써 이들을 근절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때문에 야쿠자 조직들은 생존을 위해 잔인한 보복테러로 맞서거나 더욱 음습한 지하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밤 후쿠오카(福岡)현 기타큐슈(北九州)시의 한적한 고급주택가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일본건설대공공사업협회’의 부회장이자 중견 건설업체를 소유했던 우치노 도시히로(內納敏博·72) 회장이 승용차에서 내리다 목에 총탄을 맞고 숨졌다. 2인조 범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일본 후쿠오카현에서는 지난 한 해에만 이런 총격 사건이 18건이나 발생했다. 대부분 야쿠자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쿠오카현은 일본에서도 야쿠자 활동이 드센 곳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자기네에게 반항하는 기업인이나 자영업자들을 가차 없이 테러하고 있다.

일본의 범죄전문가들은 ‘폭배조’가 시행되면서 일본 사회와 야쿠자 간 전쟁이 막을 올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폭배조 도입 배경


1980년대만 해도 일본에서 야쿠자가 자기 조직명이 적힌 간판을 내걸고 당당히 영업했다. 정상적인 법치국가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일본에선 야쿠자 활동이 묵인돼왔다.

일본 봉건사회가 붕괴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하급무사들로부터 시작된 야쿠자는 이후 부락민(전통사회의 천민마을 출신)과 재일동포 등 일본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세력이 급격히 확대됐다. 이들은 활동 초기에는 위험한 터널 건설이나 탄광채굴 작업 등에 인력을 공급하는 일을 주로 했지만, 점차 돈이 되는 일이면 합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현재는 건설업은 물론이고 유흥가 풍속업소 운영과 사채놀이, 보이스피싱, 마약 판매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야쿠자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에는 조직원이 총 18만명에 달했다. 이는 일정한 지위를 가진 공식 조직원을 합산한 것일 뿐 준조직원과 말단 하부조직까지 합치면 4∼5배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山口)파’는 전성기 때 조직원만 약 3만5000명으로 대기업을 방불케 했다.

야쿠자 세력이 비대해지면서 밤의 세계는 물론이고 정치인과 커넥션을 맺거나 연예기획사를 장악해 연예인들을 갈취하고 각종 스포츠 도박을 일삼는 등 주류 사회에 미치는 폐해가 커지면서 일본 사회 곳곳에서 야쿠자 소탕 요구가 제기됐다. 이와 함께 야쿠자가 주무르는 지하자금 규모가 커지면서 세금 추징 필요성이 제기된 뒤 정부가 적극 나섰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1992년 ‘폭력단대책법’을 시행하면서 단속을 강화했다. 말단 조직원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면 조직 수장이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다.

법 시행 후 야쿠자 세력은 위축됐다. 2010년 현재 일본 경찰이 파악한 조직원 수는 7만8000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야쿠자들은 경찰에 의해 명단이 파악되는 공식 조직원을 줄이는 대신 준조직원을 늘리는 한편 각종 하급 범죄의 경우 직접하지 않고 ‘반사회적 세력’(폭주족, 젊은 폭력배 등)에게 하청을 주는 수법으로 힘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와 경찰은 폭력단대책법을 뛰어넘는 폭배조를 도입함으로써 야쿠자 박멸에 재차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야쿠자 영화 ‘아이카와’ 포스터
◆ 일본 사회의 ‘야쿠자와의 전쟁’

지난해 8월 일본 경찰은 부동산 경매 입찰을 방해한 혐의로 야마구치파의 최고 간부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자료를 입수했다. 일본 방송연예 프로그램의 간판 사회자인 시마다 신스케(島田神助·55)가 이 간부에게 보낸 친필 편지였다. 이를 통해 시마다가 10여년 이상 사적으로 야쿠자와 교제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시마다는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폭배조 전국 시행을 두 달 앞두고 터진 시마다 은퇴 소동은 야쿠자를 근절하려는 일본 정부와 사회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계기였다.

폭배조는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야쿠자와 친분을 맺거나 야쿠자가 돈을 버는 일에 협력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야쿠자 조직원에게 자동차를 팔거나 휴대전화를 개통시켜주는 일조차 조례 위반이다. 야쿠자에게는 금융기관 융자는 물론 당좌예금 개설도 금지된다. 야쿠자에게 주택은 물론이고 회합장소를 빌려준 호텔이나 음식점도 처벌된다. 각종 건설공사에 야쿠자가 개입하는 길을 막기 위해 건설업자는 물론 하청업자에 대한 심사도 강화된다.

이 조례를 어기면 야쿠자의 ‘밀접교제자’로 찍혀 이름과 회사명이 공표된다. 야쿠자라는 이름을 달고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아예 불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게 이 조례의 취지다.

실제로 폭배조 도입 이후 야쿠자의 공식 활동이 눈에 띄게 위축됐다. 돈줄이 끊긴 야쿠자 조직이 기업식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다.

위기의식을 느낀 야마구치파의 수장인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69)는 지난해 산케이 인터뷰에서 “이번 조례는 법 아래 평등이란 원칙을 무시한다. 범법을 하지 않았는데도 당국이 우리를 반사회적 세력으로 규정해 제재하려는 것은 일종의 신분차별”이라면서 “우리가 해산되면 일본 치안은 더욱 나빠진다”고 항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번 싸움으로 야쿠자가 근절될 것라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야쿠자 문제에 정통한 언론인 이토 히로토시(伊藤博敏)는 “이 조례의 시행으로 폭력단 간판을 내걸고 일하는 자들은 점점 줄어들겠지만, 이는 조직원들이 (조직) 외곽으로 이동해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야쿠자 조직이 단지 찾아보기 어렵게 되는 것일 뿐 (폭배조로 인해) 약체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전망했다. 오픈 무대에서 활동하는 야쿠자는 감소하지만 지하세계에서 더욱 지능화된 방식으로 연명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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