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거나 문명을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을 주로 선보였던 육근병은 ‘눈은 우주와 인간의 축소체이며 역사와 세상 만물을 거짓 없이 직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비디오 설치 작업은 상파울루 비엔날레, 리옹 비엔날레 등 각종 전시에 초대되며 국내외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1992년 한국 작가로는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로 카셀 도큐멘타에 초대되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연을 다룬 사색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더 사운드 오브 랜드스케이프(The Sound of Landscape)=사이트 에너지(Site Energy)’ 연작과 ‘나씽(Nothing)’ 연작의 영상·사진 14점을 소개한다.
‘더 사운드 오브 랜드스케이프=사이트 에너지’ 연작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 속의 잡초들을 숨죽여 관찰하며 찍은 작품이다. 사진 속 거대한 숲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사실은 발 한 뼘 크기도 되지 않는 공간에 자리 잡은 잡초들을 찍은 것이다. 특정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한 뒤 촬영했다. ‘+’ 표식을 숫자들과 함께 사진 위에 표기해둔 것들은 그가 다녀간 날짜와 시간을 뜻한다. 짧은 찰나의 순간조차도 역사의 일부분의 의미가 있다는 그의 삶에 대한 철학(과거=현재=미래)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미디어 작가 육근병이 자연을 다룬 사색적인 작품 ‘더 사운드 오브 랜드스케이프=사이트 에너지’. |
정아람 기자 arb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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